▲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에 조성된 ‘강화의병 전등사 항일 전적지’.  <강화군 제공>
▲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에 조성된 ‘강화의병 전등사 항일 전적지’. <강화군 제공>
인천은 일본 제국주의 침탈에 맞서 저항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다.

시민들에게 잘 알려진 황어장터 기념관과 창영초등학교 3·1 운동 발상지 외에도 지역 곳곳에는 일제에 항거한 흔적이 여럿 남아 있다.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를 내달려 지금은 육지로 변해 버린 용유도에 접어들면 오성산 아래 ‘3·1 독립만세 기념비’가 서 있다.

3·1 독립만세 기념비는 1919년 3월 당시 용유면에 거점을 둔 항일단체인 ‘혈성단(血誠團)’이 주변 남북리·거잠리·을왕리·덕교리 등 주민에게 격문을 배포해 독립만세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다. 1983년 용유 주민의 뜻을 모아 세운 이 기념비는 ‘애국애족(愛國愛族)’, ‘지성보국(至誠報國)’이라 적힌 두 기둥 위에 검은 대리석으로 당시 만세운동의 현황과 추도시 등이 새겨 있다.

연안부두에서 뱃길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덕적도에도 지역 내 독립만세 운동의 역사를 담은 비문이 있다. ‘기미 3·1 독립만세 기념비’는 1919년 당시 사립명덕학교 교사인 임용우(1884∼1919)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벌인 덕적 주민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항일 유적이다.

3·1 독립만세운동 60주년을 맞은 1979년 4월 그들의 애국독립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덕적도 주민이 당시 만세운동을 벌였던 덕적초·중·고등학교 옆 부지에 기념비를 세웠다.

강화도 전등사 일대에 걸쳐 조성된 ‘강화의병 전적지’는 구한 말 강화의병이 국권 회복을 위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장소다. 1907년 강화지역 항일 조직인 ‘대동창의단’이 친일파 밀정 처단과 항일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벌이던 중 강화지역 의병을 토벌하기 위해 출병한 일본군과 전등사 및 정족산 일대에서 일주일 간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대동창의단’과 강화도 주민들은 일본군의 강경한 공세에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 외에도 강화지역의 3·1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강화 3·1 독립운동 기념비’와 강화지역에서 항일 의병 활동을 전개한 연기우(延基羽·?~1914) 의병장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연기우 의병장 공덕비’ 등이 있다. 이처럼 인천은 일제에 대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항거한 항일의 도시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인천시 시사편찬위원회 강옥엽 박사는 "항일 유적 등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 활동과 함께 학술대회를 활발히 전개해 시민들이 지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제성 기자 wjs@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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