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지사의 판결은 많은 국민들에게 아직도 남성중심의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만들었다. 이번 정권에서 힘들여서 국민적 문화를 재구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느낀 것은 권력을 사칭한 갑질에 대한 타도라고 느끼고 있었다. 이번에는 사회적 인식이나 공감능력이 좀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모처럼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은 비단 내 주변만은 아닐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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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모<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미투운동으로 인한 폭로로 사회 전반에서 많은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전과는 다르게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었다. 예전에는 감히 말하지 못했던 사실을 말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전에는 피해자들을 비판하는 시선과 책망하는 시선에서 가해자를 비판하는 시선으로 이행하고 있었다. 분명히 사회적 분위기는 그랬다. 그런데 안희정 전 지사의 판결은 사회적 분위기와는 다른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공감을 받는 사실들이 법으로 인정받기에 아직도 부족한 사회라는 것이 무척이나 무력감을 느끼게 만든다.

 「트러스트」의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대한민국 사회를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부족하다고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에 언급하면서 금융위기를 예측했다. 그 당시 우리는 위기를 겪었지만 모두 협력해 슬기롭게 위기를 넘겨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때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바닥이라고 예측했지만 현재 그 사회적 자본이 더 축적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은 경제적 자본을 축적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가 아니라 서로 신뢰를 하지 않는 여러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명칭을 사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회적으로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기 어렵다. 권력과 지위라는 것이 영원한 것도 아니고 가장 유리한 권력과 지위라는 것도 상대적이어서 억울함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모든 사회 구성원이 평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고 평가에 대한 신뢰를 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이미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덜 가진 사람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낮은 사람대로 피해의식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올해 미투 운동으로 사회유명 인사들의 성폭력사건이 유독히 많이 보도됐고 많은 사건들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건은 가해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판결이 아닐까 생각된다. 피해자가 피해를 당하고 정상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찾아서 피해자답지 않음을 찾아서 증명함으로써 권력형 성범죄가 아님을 인정받으면 종료되는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이번 정부에서 장자연 사건이 다시 머리를 들게 된 것은 아마도 정당하지 않은 사건을 다시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많은 사람들이 재거론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유리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가진 권력에게 역시나 유리한 사회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각인시켜 주는 판례로 보여 매우 씁쓸하다.

 2018년 초저출산 국가로 고민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의 인권과 안전이 이렇게 보호되지 않는 현재, 어떻게 이 사회를 신뢰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며 사회에 내보낼 수 있을까 싶다.

 사회적 약자에게 강한 사회는 아직도 성숙하지 않은 사회이며 이런 문화가 정착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안정을 주지 못한다.

 이번 판결로 충격을 받아 무기력을 경험한 이들에게 다음에는 부디 위로가 되는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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