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쏟아내는 각 언론사 뉴스에는 ‘110년 만의 폭염’이라는 말이 수식어처럼 따라 다닌다. 그래서 옛 어르신들은 삼복(三伏) 기간 중 안부 편지를 쓸 경우, 서두에 염천지절(炎天之節)이라는 인사말로 시작을 했다. ‘찌는 듯한 더운 날씨의 계절’ 이라는 뜻으로 과거나 현재나 복중 더위는 우리를 꽤나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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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겸 (경기시인협회 이사/시인)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더위보다도 무서운 것과 싸우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이것은 어쩌면 내 앞에 전개되고 있는 인생과 그를 극복하려는 노동시장에서의 싸움이다. 사회적 동물들이 운집한 경쟁적 사회에서 먹잇감을 놓고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싸움의 방법에도 편차가 있기 때문이다.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모르고 사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조조할인은 흔히 극장에서 아침 일찍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요금을 깎아 주는 제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버스에도 조조할인이 있다.

 새벽 첫차가 대개 오전 4시에 출발하는데 새벽 6시 30분 이전에 승차하는 손님에 한해 광역버스 요금을 2천300원에서 1천840원으로 할인해 준다. 기쁘게 느껴져야 할 할인제도가 극장의 조조할인과는 달리 왜 슬프게 다가오는 것일까? 이 시간대에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은 대개가 청소용역업체 노동자와 새벽장사를 하는 사람, 그리고 삼교대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사람, 혹은 인력시장에 몸을 맡기는 일용 건설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새벽밥을 먹고 땡볕이 내리 쬐는 노동의 현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 죽음의 그림자가 도사린 빌딩과 아파트 건축현장, 도로, 교량, 터널 등 토목공사장에서 십장의 눈치를 보아가며 하루의 노동을 품삯과 교환한 이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가장으로서 위엄을 보이려고 피멍든 등짝에 가족 몰래 파스 몇 장 붙이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잠을 청하며 지친 시간들을 녹여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을 맞이하고 일터로 나가는 것이 일상적 생활의 흐름이다.

 하루를 버티기 힘든 생존 경쟁의 노동시장에서 상대방으로부터 언제 어떤 방법으로 공격을 당하고 어떻게 방어를 해야 목숨을 보존할지 모르는 세상, 비록 막노동판이지만 언제 어떤 명목으로 자기의 일터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눈을 뜨면 당연히 희망차게 맞이해야 할 아침이 실종된 지 이미 오래 됐기 때문이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작동되는 건물 밖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유리창을 닦거나 청소를 하다가 더위를 피해 냉기가 서려 있는 화장실 모퉁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청소 노동자들이 내 어머니, 내 큰 누이이라면, 영상 40도를 육박하는 건설 현장에서 뜨겁게 달궈진 강철비계 위를 무거운 질통을 메고 더듬더듬 걷는 건설노동자들이 내 아버지, 내 큰 형이라면 당신은 그들에게 얼마의 일당을 줘야 합당한 대가라고 생각을 할까?

 2018년 상반기 정부 노임 1일 단가 기준을 보면 건설현장의 보통 인부 노임은 약 11만 원, 조력공 12만 원, 방수공 13만 원, 1군 발암물질이 함유돼 있어 위험성이 내포된 석면 해체공이 고작 14만7천 원이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일하는 일반 기계 운전사가 11만8천 원에 배관공이 14만8천 원이다. 그것도 인력 시장에서 소개를 받았을 경우 거의 10%를 알선 수수료로 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의 3~4년차, 공무원 등 공공기관의 경우 10년차 경과한 소위 화이트칼라 계층의 연봉 5천 만을 기준 할 때 이들의 일당은 얼마나 될까? 한 달 22일을 근무할 경우 그들은 약 20만 원의 일당을 받고 있는 셈이다.

 지금 사측과 노측은 최저임금제를 갖고 연일 혈투 중이다. 노동자들의 신성한 노동의 대가를 그렇게 획일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노동의 빈도와 환경, 위험성, 수요성, 기피성 등을 고려, 다각적으로 직군과 직렬 그리고 직종을 세분화해 최저 임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 염천지절에 에어컨 냉기가 싫다고 카디건을 걸치고 사내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카노를 한 잔 시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우아한 자세로 컴퓨터 모니터를 집중하는 화이트칼라 여러분! "오늘, 당신은 일당만큼 노동에 충실하셨나요?"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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