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심이 깊은 것 외에는 특별히 내세울게 없던 그가 아버지로부터 땅콩 농사를 물려받을 때만 해도 미국의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닉슨의 사임으로 별안간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에게 패해 백악관을 물러나기까지 5년간의 재임동안 국내외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 역시 그리 후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 전 세계인의 존경과 신망을 받으며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가 바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카터 전 대통령이 `세계 분쟁 해결의 전도사'로서 수 십년간 한반도와 중동 등 국제분쟁을 중재하고 인권을 신장시킨 공로를 인정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벨위원회는 지난 70년대 말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에 그가 중대한 기여를 한 것만으로 일찍이 수상 자격이 있었다고 밝혀 그동안의 심적 부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카터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도 특별하다. 그가 한반도 분쟁 위기 때마다 북한을 오가며 탁월한 외교실력을 발휘, 남북간 긴장완화에 애써왔음을 기억한다. 지난 94년에 판문점을 통해 평양에 들어가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가진 카터는 핵개발 계획 동결 약속을 받아내 북미간 기본합의서가 체결되는 물꼬를 텄으며 비록 성사는 못됐지만 김영삼 대통령과 김 주석간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하기도 했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관계를 유지해 국제사회에 대북 식량지원과 경제제재조치 해제를 촉구하며 북한 껴안기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오늘날 카터에 대한 존경은 그가 국제분쟁의 해결사로서 뿐만 아니라 목수가 되어 지구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짓는 일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75세의 노구를 이끌고 벽돌을 쌓고 망치질을 하는 전직 미국 대통령을 상상해 보라. “하나님이 나를 미국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은 대통령을 잘 하라는 뜻이 아니라 대통령직을 마친 다음 시키고 싶은 일이 있어 그리 하신 것으로 믿는다”는 그를 통해 권좌에서 물러난 뒤 더 큰 진가를 발휘하는 영웅의 참 모습을 읽게 된다.
(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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