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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훈<경기본사 경제문화부장>
올해 초, 경기문화재단의 계약직 문제에 대한 취재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재단 한 정규직원이 이런 말을 건넸다. "사실 역차별 받는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디테일한 인용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어 간접인용으로 바꾸자면 요(要)는 이렇다. 급여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데 소위 ‘무한책임’은 정규직원에게만 있다는 의미다. 이런 류의 인식은 이후에도 최근까지 몇몇 정규직원에게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아니 직(職)을 걸더라도 나의 생각은 다르다. 재단 정규직원의 진짜 문제는 계약직과의 대립이 아니다. 정규직원 내부에 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그 문제를 논하자고 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만 언급하겠다. 간접인용이지만 역차별을 언급하는 정규직원의 배경 중 하나는 ‘급여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다’이다. 그러나 보라. ‘급여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다’는 정규직원만 있는가. 재단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정규직원이 그들보다 십여 년 먼저 들어온 선배들만큼, 그들이 그런 경력을 쌓았을 때 그렇게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기도문화의전당이 두 달 여 전부터 임단협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자리한 의식 중 하나가 사측은 ‘갑’ 노조는 ‘을’이다. 비단 의식인지 현실인지는 따져봐야 할 터이지만, 역시 이를 따지기 위해 언급한 부분은 아니어서 차치(且置)하자면 이 때문에 언제나 노조를 응원해 왔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상한 소리가 사측이나 노조의 공식적인 확인 절차를 거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또 한 번 간접인용하면 이렇다. ‘예술단원의 외부활동에 제약을 걸지 말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경기도립예술단의 예술단원 외부 활동은 예술단장이 인정하면 할 수 있다. 공공예술단에 속한 단원이 외부활동을 제약 없이 할 경우 수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규정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과거 모 공공예술단의 경우 단원이 학생들의 과외를 무차별적으로 진행해 물의를 일으킨 바도 있다. 그런데 이를 없애 달라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요구가 도문화의전당 노조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입장이 아닐 수 있다. 또 협상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련의 대화가 오가며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오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공예술단에 속한 단 한 명의 단원이라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민간이나 개인 신분으로 피땀 흘려 활동하고 있는 다른 주변을 둘러 봤으면 한다.

 경기문화재단과 경기도문화의전당은 경기도 문화예술계를 지탱하고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두 축이다. 공교롭게도 두 수장 모두 다음 달 초가 되면 임기가 끝난다. 이 때문에 두 기관은 이사회를 열고 신임 재단 대표와 전당 사장을 선임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 재미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예년 같으면 수장이 바뀔 무렵 해당 인물에 대한 윤곽이 드러났다. 기자들은 마치 그것이 특종인 양 앞다퉈 누가 대표가 되고 누가 사장이 된다는 식의 기사를 써왔다(이 굴레에 자유롭지 못했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현재는 안갯속이다. 물론 거론되는 인물이야 있다. 특정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양날의 칼과 같다.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지 않는 것 아니면 철저히 비밀리에 논공행상을 하는 모양새다. 논공행상 자체가 부정적일 순 없지만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 수장이 된다면 경기도 문화예술계의 두 축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가 그저 우려라면 투명한 공모를 거쳐 적합한 인물이 올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동시에 갖게 된다.

 모든 사건사고의 시작과 끝은 인재(人災)다. 유토피아가 아닌 이상 사람의 역할은 다른 요인에 비해 절대적이다. 주저리 주저리 떠드는 것보다 고리타분할 수 있지만 고전적인 글귀가 떠오르는 시점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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