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와 불교 신자들에게 지난주처럼 참담하고 절망스러운 시기는 없었을 듯싶다. 신자라는 것을 숨기고 싶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천주교의 배드뉴스는 15일 미국으로부터 날아왔다. 펜실베이니아주 검찰의 대배심 보고서에 따르면 1940년부터 70여 년간 약 300명의 신부들이 1천 명이 넘는 소년소녀 신도들을 성적으로 추행, 강간한 사실이 드러났다. 기가 막힌 건 지도부인 주교들이 오히려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하고, 사제들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는 등 은폐 행위에 적극 가담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부여된 신성한 권위를 악용,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을 사적 탐욕의 수단으로 써왔다는 사실은 종교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한다.

 불교도 예외는 아니다. ‘친자 의혹’ 등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오던 조계종 설정 총무원장이 사상 처음으로 중앙종회에 의해 불신임되는 사태가 지난 16일 일어났다. 정작 문제는 ‘퇴임 후 권력 쟁취를 위한 계파싸움’이 그 이면에 숨겨져 있어, 오히려 단순한 사퇴가 더 큰 악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심각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이번 총무원장의 퇴진을 주도한 전임 지도부 세력은 사바 세계에서도 보기 어려운 안 좋은 모습들을 이미 보여준 전력이 있다. 이렇듯 1천600년 넘은 한국 불교가 처참하게 유린되고 난도질 당하는 것도 자신에게 부여된 신성한 권위를 악용, 부처님 뜻을 따르는 신도들의 믿음을 사유화하려는 일부 스님들의 탐욕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총무원장 직선제나 중앙종회 해산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스님들을 돈과 권력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고위공직자 재산 신고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총무원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분산시키며, 집행과 운영은 재가 그룹에서 주관하되 이를 감시할 수 있도록 내부감사 제도를 구축하면 가능한 일이다. 한마디로 총무원장이든, 지도부든 그곳에서 누릴 게 없도록 만들면 된다. 대반열반경에 따르면, 석가모니께서도 "출가자는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라"며 자신이 죽은 뒤의 유골 및 불탑 숭배 관리를 재가 신도에 맡기셨다. 스님들은 세속적인 것에 관여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절에 와서 봉사하고 시주하는 노보살들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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