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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국제펜클럽 인천지부 부회장/소설가>
111년 만의 최악 무더위, 40일 최장 기록 폭염특보가 해제된 지 하루 만에 다시 폭염주의보 발령. 폭염의 역사를 날마다 경신하고 있는 올 여름이다. 최고 기온이 35도 이상인 날이 2일 이상 지속될 때 발령되는 폭염특보가 올 여름에는 일상이 됐다.

 이상고온은 지구온난화가 가져온 기후재해로 인간이 만든 대재앙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지구온난화의 여러 원인들 중에서 초록의 자연을 뭉개고 없애 버린 대가도 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알려진 대구는 가마솥처럼 달궈지는 분지 형태라 아프리카만큼 덥다고 대프리카라고 불리지만 가장 더운 도시라는 오명을 벗었다. 이유는 도심 가로수 조성의 효과다. 대구시는 대대적으로 도시 조림사업을 펼쳐 3천5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도심의 가로수가 도심 열섬효과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는 산림청 발표를 SBS방송국에서 실험한 뉴스를 봤다. 실험참가자를 그늘이 없는 땡볕에 10분을 세워뒀다가 얼굴 온도를 측정하니 체온보다 1.5도가 상승했는데 가로수 밑에 세워두고 10분 후 측정한 얼굴의 온도는 체온보다 1도가 떨어졌다.

키 큰 가로수와 가로수 밑에 키 작은 쥐똥나무 싸리나무 등으로 하층숲을 조성한 곳은 복사열 방지와 나뭇잎의 증산작용으로 주변보다 온도가 4.5도나 낮아진다는 실험결과가 놀라웠다. 플라타너스 나뭇잎의 솜털이 도시의 공기를 정화하고 벚나무는 콘크리트로 덮인 도시의 미관을 아름답게 장식해 준다.

 초목이 주는 경제적 가치는 거시적으로 봐야 될 것 같다. 당장 눈앞의 경제논리와 편리성에 밀려 하루아침에 수십 년 자란 나무가 잘려나가는 광경은 편하지 않다. 제주도의 비자림 숲 도로 확장 공사가 세간의 주목을 받아 찬반 양론으로 시끄러웠다. 공사가 중단된 상태로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찬반 양측의 이유가 다 일리는 있다. 관광객이 몰려서 정체구간이 되다 보니 지역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했고 제주도는 여러 사안을 검토한 끝에 2차선을 4차선으로 확장하면서 아름다운 비자림숲을 훼손했다. 비자림과 사려니숲 사이길을 지나가면서 아름다운 숲의 풍광을 보며 힐링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숲은 가꾸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과 숲의 공생을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나무 편지’로 유명한 나무 칼럼을 쓰는 고규홍 선생이 한 말을 새겨보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중심으로 구글맵을 켜서 반경 1.5㎞ 이내만 살펴보라. 그 원 안에 살고 있는 초본식물과 목본식물의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경이로움에 전율이 온다. 식물 관찰의 즐거움을 누리는 축복은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무한대로 가능하다."

 나무를 공부로 대하지 마라,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진솔한 사랑이다. 나무를 느끼라는 조언이 신선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어떤 나무와 풀이 자라는지 애정의 눈으로 살펴보는 취미를 가져보면 재미있겠다. 가까이 가서 오래 바라봐야 초목의 아름다움에 빠진다는 선생의 말처럼 허투로 보아 넘긴 나무를 찬찬히 느껴보면 그저 평범했던 나무 한 그루에도 애정이 생겨 특별해질 것 같다.

 한 생명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한계시간이 2천 년이라면 경이롭다. 인간의 시간으로 본다면 더없이 숭고하다. 탄소동위원소 측정법으로 700년 전, 2천 년 전의 연꽃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더 나아가 툰드라 지역 다람쥐 굴에서 발견된 씨앗은 무려 3만 년 전의 씨앗이 싹을 틔워 꽃을 피웠다 한다. 350년을 살아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모습으로 수형이 아름다웠던 곰솔 한 그루의 사진이 참혹했다. 택지개발로 지가 상승을 노린 인간의 이기심이 천연기념물 곰솔의 밑둥치에 독약을 주사했다. 곰솔은 서서히 죽어 나뭇가지를 모조리 잘라내 참수당한 모습이었다. 곰솔은 가지 하나가 살아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시간을 초월한 수목이 인간의 욕심으로 스러지는 것이 몹시 부당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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