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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부모라는 이름

김사연 수필가/인천문인협회 이사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8월 27일 월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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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수필가
불교 시인 김수원의 시집 「바람의 순례」를 읽었다. 그의 시집은 생사의 경계와 사랑의 관조를 심화시켜 독자를 반성케 하기에 작품마다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한참 동안을 마무리해야 했다. 간호사인 시인은 20여 년 전부터 노인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요양원이란 죽음을 앞두고 잠시 머무는 곳이다. 생과 사가 교차되는 동안 걸어온 인생을 반추할 수 있는 평화롭고도 엄숙한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야박한 세상 인심 때문에 애면글면하고 애지중지 키운 자식에게조차 이승을 하직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버림받고 외면당하는 노인들의 외로운 모습을 시인은 수없이 지켜 봤다. 우리의 부모들은 하나같이 하얀 수건을 머리에 쓰고 가을걷이를 하느라 관절통 신음을 노래처럼 내뱉으며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켰던 분들이었다.

 #1. 엄마는 일 년에 한 번씩 전국 유람을 한다/묵묵히 딸의 손에 이끌려 서울에서 청주로 포항으로 떠난다/철새처럼 때가 되면/이 자식에서 저 자식에게로 바람의 길에서/몸속에 길을 새긴 20년/구순에 아들집으로 유람가는 엄마/차를 타자마자 병든 닭처럼 졸고 계신다/올해가 마지막 길이겠지/꿈속인 양 혼잣말 하는 엄마/"내 죄가 많아 이리 오래 사는구나. 이 늙은이를 받아주는 아들 며느리가 착해"/아들집 골방에 엄마가 짐보따리를 푼다/꼬깃꼬깃 접은 쌈짓돈을 꺼내/샐쭉한 표정을 짓는 며느리 손에 쥐어준다./ (엄마의 유람길)

 #2. 요양원에서 장기요양 등급 재심사를 받는/할아버지에게 아들 며느리가 교육한다/아버님 제가 하는 대로 따라해 보세요/나이는 몇 살이에요 물으면 어떻게 하라고 했어요/ 모른다고요?/네~아주 잘하셨어요/이름이 뭐냐고 물어도 대답하면 안 돼요/건강공단 선생님 앞에서 생각 안 난다고 해요/치매를 연기해야 요양원에 계속 살 수 있어요/(중략)노망기를 코뚜레에 스스로 꿴 할아버지가/도살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황소같이/자식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기꺼이 운명에 순종적이어야 한다/(중략)집으로 보낼까 봐 험한 눈초리를 보내는 자식을 천상의 드높은 사랑으로 품으며/세상을 자물쇠로 닫는 모르쇠/금빛 열쇠로 찬란한 은하를 연다./(모르쇠, 금빛 열쇠)

 #3. 요양원 102호 할머니가 가쁜 숨을 거둔다/이미 동공이 풀려 있다/빨리 와 주셔요/와락 울음 터트리듯 다급한 전화에 부조리극의 대사처럼 대답은 느긋하다/내일 가면 안 되나요 지금 바빠서/돌아가셨어요 어르신을 모셔가셔요/그럼 장례식장으로 보내주셔요/경비는 부칠게요/창밖에 장대비가 퍼붓고 천둥이 친다/그리움을 품고/지구별의 눈꺼플을 닫은 망자/80여 년의 생애에 부고장 한 장 없다/딸에게 남겨줄/금빛 쌍가락지만 손 안에 꼭 쥐고 있다./(요양원 102호 할머니)

 #4. 먼 바다 무인도 같은 요양원에서/할아버지가 홀로 돌아가셨다/평생 교사로 교육의 의지를 불태웠듯 태양이 다비식을 치르는 더위 속/초상을 위해 아들에게 연락을 했다/오대산 정상이라 지금 갈 수 없다고 했다/12시간 지나서야 막내딸이 왔다/장례절차에 대해 상의했다/큰딸 큰아들은 외국생활이 바빠/돈만 부친다고 했다/부인도 번거로우니 하룻밤 식구끼리 지내고 화장하여 바다에 뿌리자 했다/한밤중 매미가 곡비소리로 운다/이 방에 갇혀 보낸 노년,/무인도에서 살다 가시는 길./(무인도 요양원)

 시인은 애틋한 천륜도 바라보는 사랑과 관계하는 사랑으로 나뉜다고 보았다. 바라보는 사랑은 짝사랑이자 일방적이지만 서로 관계하는 사랑은 쌍방적이며 온사랑이라고 했다.

 시인은 독자에게 묻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건강할 때만 유효하고 경제력이 있을 때만 힘을 발휘하는 것인가?

 시인은 올챙이 적 시절을 망각하고 천륜을 짓밟는 젊은 치매 환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치매는 마음이 지워지는 병이자 정신적인 추락을 의미하는 병이기 때문이다. 부모라는 이름은 어느 누구도 지울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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