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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배신

한재웅 변호사/국세심사위원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8월 27일 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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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웅 변호사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자유는 권력이 남용되지 않을 때만 존재하며, 권력을 남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적었다. 몽테스키외의 통찰력은 대부분 근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분리하는 제도로 구현돼 있다. 국가권력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 작용하며 사법부는 다른 권력기관으로부터 독립해 법률상의 분쟁에 대한 최종 판단권을 갖는다. 만일 사법권이 독립되지 않는다면 법 집행 기관에 의해 법률이 자의적으로 해석돼 권력의 남용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사법권의 독립은 민주주의와 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한 가장 핵심 요소인 것이다. 물론 우리 헌법도 법관의 독립을 규정하고 있다.

 세계의 역사를 볼 때 사법부의 독립이 당연히 주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많은 투쟁과 협상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처음부터 헌법상 사법부의 독립은 규정돼 있었지만 과거 독재정권의 과도한 권위와 폭력 앞에 독립성이 훼손된 일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법관들은 저항하기도 하고 일부는 굴복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민주주의 발전의 물줄기를 타고 함께 발전해 왔다. 사법부의 역사적·헌법적 위치를 생각하면 법관이 다른 권력에 굴복한다는 것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과거 독재권력하의 엄혹한 현실을 생각할 때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최근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 밝혀지면서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서 박근혜 정부와 재판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역사적 대의를 위해서 불의한 제도에 항거한 것이 아니고 가혹한 폭력과 압정에 굴복한 것도 아니라 단지 작은 목표를 위해서 스스로 권력에 굴종하고 불법을 자행한 것이다. 이 사건은 외부 압력 없이 사법부 스스로 독립성과 존립 기반을 포기한 것으로 건국 이래 가장 부끄러운 사법파동으로 기억될 만하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문건에는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은 청와대(BH)와 사전교감을 통해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한다는 문구가 있으며, 실제 양승태 대법원장의 ‘현안 관련 말씀 자료’라는 문건에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상임금, 과거사 국가배상, 쌍용차 정리해고, KTX승무원 해고 사건 등이 재판 협력 사례로 등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상고법원 성사를 위해 ‘영장 없는 체포 활성화’와 ‘공안사건 증거 인정 특례’와 같은 반헌법적인 조치를 법무부와의 ‘빅딜’에 이용하려고 검토한 정황도 있다. 변호사협회에서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하자 변협회장을 사찰하고 회장 선거에 개입을 시도했고, 변협을 압박하기 위해서 변호사 형사 성공보수 사건의 결론을 내고 재판을 기획한 정황까지 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대부분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문건에 있는 내용으로서 근거 없이 막연한 것들이 아니다.

 양승태 대법원은 마치 이익집단이 로비를 하듯이, 또는 장사꾼이 장사를 하듯이 헌법이 사법부에 부여한 권력을 사용했다. 헌법이 사법부에 부여한 권한은 권력의 남용을 막아 민주주의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것이지, 다른 권력자와 자신의 권력을 거래하라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개탄스러운 것은 양승태 대법원이 청와대에게 얻으려고 했던 ‘상고법원’은 법원 내부의 관심사일 뿐 국민들의 인권이나 생활과는 거의 무관한 것이며, 심지어 법관의 해외 파견과 같은 아주 사소한 사안을 위해서도 재판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KTX 승무원 해고사건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히자 패소를 비관해 자살하신 분도 있다. 재판거래에 희생된 재판의 직접 당사자들은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할까?

 법을 지키는 사법부가 국민을 배신한 사건이며 이는 국민을 지켜야 하는 법이 국민을 배신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법원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 사법부는 전대미문의 위기이다. 감히 생각하면 법원은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이 사건을 맞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로 대응한다면 환자의 환부를 다 잘라내지 못하고 수술을 마무리하는 꼴이 된다. 지금 법원이 지켜야 하는 것은 법원이라는 조직이 아니라 법관의 양심과 독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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