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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경기평택항만공사 전략기획팀장
얼마 전 일이다. 취업을 앞둔 후배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그들의 온통 관심은 단연 ‘취업’이었고 나와 가진 자리에서 그들이 내게 기대하고 듣고 싶은 것은 취업 노하우, 취업에 도움이 되는 면접 팁 등 취업을 위한 취업에 의한 취업 그 열매를 얻고자 하는 갈망 어린 눈빛에 매서움마저 느껴졌다.

 하나 마냥 취업 어쩌고 저쩌고 이런저런 의미 없는 얘기들을 그들에게 던지기보단 본질에 대해 접근하고 분명한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왜 ‘취업’을 하고자 하는지부터 물었다. 이런 질문을 받아 본 적 없는 그들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라는 듯 황당하다는 눈빛을 자기들끼리 교환했고,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했다고 한다.

 여기서 질문을 드려 보겠다. 여러분은 어떤 노예인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님 남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 말이다. 후자로 산다면 노예다. 노예가 되고자 취업하지 않는가. 노예를 자처하며 때론 발탁됨을 기뻐하며 자본가의 그늘에 단 수확물을 얻고자 자기 몫 그 이상을 팔 걷어붙이며 동료 노예 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지 않은가. 자기 몫을 하면 되는데 말이다.

 때론 자본가의 눈에 들기 위해 동료 노예를 험담하고 시기·질투를 반복하며 치열하고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며 찍어 내고 있지는 않은가. 이 모든 것이 조금 더 올라가고 싶은 노예의 간절함에서 그 근간을 두고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뭐하나? 우리는 작위적인 무수한 말들을 들으며 노예로 살고 있고 살아왔다. "오너처럼 생각하고 일해 달라, 자네 회사라고 생각하게…" 이 무슨 황당한 말인가. 착각을 일으켜 더 완벽한 노예로 만들고 싶다는 자본가의 심리가 반영된 것을 모르나. 다시 질문을 드려보겠다. 당신은 어떤 노예인가요?

 어떤 노예로 살아갈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보라고 후배들에게 화두를 던졌고 사뭇 ‘갑분싸’ 분위기는 나름 토론장으로 점차 변해갔다. 취업을 갈구하는 자리에서 노예론을 꺼내 들었으니 말이다. 취업을 해야 하는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다수의 후배들은 "돈을 벌기 위해"라고 답했다. 또 질문이 이어졌다. 왜 돈을 벌려고 하는지.

 이 무슨 황당한 질문이냐는 표정이 또 이어졌고 저마다 미사여구 섞인 말들이 쏟아졌다. 왜 돈을 벌려고 하는지에 답은 간단하다. 소비하기 위함이다. 소비하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돈을 벌어 소비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 취업해야 하는 것이고 소비를 끊으면 취업할 일은 없다. 그러나 소비를 끊을 수 없기에 취업을 갈구하고 있다.

 나는 그들이 본질에 대해 한 발 더 들어가 생각하길 원했고 의식 있는 노예로 살아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긴 말들이 계속 이어졌다. 의식 있는 노예란 어떤 노예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주인이고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노예라고 한다.

 후자가 전자보다 많다. 자본가보다 소비자, 노예가 더 많으니 말이다. 어떤 소비를 해야 하고 어떤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지 되새겨 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늘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본가들은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쏟아내야 더 많은 잉여가치를 얻을 수 있다.

 이 시간에도 무슨 트렌드인 양 교묘히 포장된 거품에 넘어간 채 눈부시게 소비해주고 있다. 취업을 하고 남이 시키는 일을 하며 돈을 받는다. 기본 메커니즘이 그렇다. 여기서 나는 의식 있는 노예로 살자고 후배들에게 목 놓아 외쳤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강요받으며 생존경쟁 환경에 놓여져 있다. 남들과 더 치열하게 경쟁해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것을 취하고자 완벽한 노예가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우습지 않은가. 결국 이익을 취하는 집단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가진 자들만의 권력 앞에 왜 우리는 불평등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가, 부의 불평등이 극심하게 악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취업을 앞둔 후배들에게 무분별한 소비 과정을 통해 잠시 주인인 양 착각에 취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투자로 이어지는 소비가 보다 현명한 소비임을 전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의 기구라고 했다. 보다 공정한 수탈과 공정한 재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자본가들이 아닌 노예로 살고 있는 다수의 국민에게 보다 공정한 분배가 돌아가야 되질 않겠는가. 처음 ‘갑분싸’였던 분위기는 어느 새 빛나고 있는 그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근원적 문제들을 고민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짚어보고 살아가자는 선배의 말을 이해했으리라 믿으며 해질녘 풍경을 뒤로 잔을 기울였다.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스몰 이즈 뷰티풀(Small is beautiful·작은 것이 아름답다)을 되새기며 말이다. 그들이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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