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맹의 섬
올리버 색스 / 알마 / 1만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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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통으로 인한 색각 이상을 겪은 경험이 있어 색맹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았던 올리버 색스. 그는 색맹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태평양의 작은 섬 ‘핀지랩’과 ‘폰페이’로 향한다.

 영국의 신경의학자인 올리버 색스의 신작 「색맹의 섬」은 색맹과 신경질환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색맹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올리버 색스는 ‘자기네만의 독특한 멋과 예술, 음식, 의복을 지닌 완전한 색맹 문화를 상상’하며 ‘빛깔의 이름도 빛깔에 대한 은유도 빛깔을 표현하는 말도 없는, 그러나 우리가 그저 잿빛 한마디로 끝내 버릴 질감과 농담(濃淡)에 관해서라면 제아무리 미묘한 것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언어를 가진, 그런 문화’를 찾아 나선다.

 마침내 색맹에다가 환한 빛은 쳐다볼 수도 없는 ‘마스쿤’을 안고 살아가는 섬사람들과 마주하게 된 올리버 색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지도, 애처롭게 바라보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이 밝은 빛 아래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선글라스를 건네고, 마스쿤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선천적 질환이라고 말할 뿐이다.

 완전 색맹인 동료 의사 크누트와의 동행으로 올리버 색스는 색맹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가고, 마침내 그 여정의 끝에서 우리를 무채색 세계의 경이로움으로 인도한다.

 이 책이 가진 가장 값진 의의는 올리버 색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올리버 색스는 인류학자가 되기도 하고 식물학자가 되기도 한다. 그 변화무쌍함은 그가 치열하게 작성한 기록에서 비롯된다. 메모를 넘어서는 세세하고도 논리적인 기록을 기반으로 사방으로 가지를 뻗는 사유는 그를 받치는 풍부한 지식과 결합해 밀도 있는 과학 논픽션 「색맹의 섬」을 탄생시켰다.

 이처럼 올리버 색스가 섬을 여행하며 사방으로 뻗어낸 사유의 갈래, 그 종착지는 결국 자연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귀결된다.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나태주(편역) / 알에이치코리아 / 1만3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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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나태주의 소담한 문체로 읽는 허난설헌 시선집이다. 시인은 자신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허난설헌의 작품을 고르고 오늘의 말로 옮겼다. 허난설헌의 삶과 시에 마음을 빼앗긴 시인은 발문과 서시로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읊어낸다. 시대를 앞서 간 난설헌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 시대를 비껴 간 그녀의 문재를 아끼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허난설헌의 시를 고르면서도 생전 자신의 시집 한 권 남기지 못했던 그녀를 기리며 동생 허균이 엮어낸 「난설헌집」에 기초해 그대로 묶지 않고 마음의 결을 따라 노래하듯 구성했다.

무엇보다 나태주 시인의 편역이 빛을 발하는 것은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한시를 시인의 소담한 문체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여기에 난설헌이 직접 노래하듯 ‘여인의 마음’이 담긴 목소리로 옮겼다. 덕분에 기존의 허난설헌 시집에 비해 조금 더 친근하고 다정하게 읽힌다.

조선에 반하다
조윤민 / 글항아리 / 1만7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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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의문 밖에 사는 조만준은 떡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평민이었는데, 왕실 사당에 행차하는 어가에 느닷없이 돌을 던진다. 관아에서 잡일을 하는 하인 박중근은 지엄한 궁궐 마당에서 칼을 빼들어 자살을 기도하고, 평민 장득선은 아들과 함께 능에 불을 지른다.

절치부심하며 아버지의 복수를 준비해 온 이명과 이가음이(李加音伊)형제는 13년째 되던 해 마침내 옛 상전을 죽인다. 충주 주민들은 수령을 대신한 인형에 화살을 쏘며 욕설을 퍼붓고, 경희궁을 수리하던 목수들은 포도청에 난입해 관리를 구타한다. 농부와 떠돌이 노동자로 살아온 백성이 의적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부잣집 재물을 취한다.

그 시대에도 불온한 자들이 있었다. 지배세력과 사상이나 신념을 달리한 인물들이다. 임진전쟁을 계기로 집안이 몰락한 길운절과 서얼 출신 소덕유는 제주 주민을 선동해 반란을 기도한다. 승려 여환은 무당, 지관과 함께 북한산에서 대홍수의 날이 오기를 빌며 변란을 도모한다.

저자는 책 「조선에 반하다」를 통해 평민들이 외치는 절규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거칠지만 정직한 그 몸짓을 겸허하게 짚어 본다.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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