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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중국의 전·현직 지도부들의 비공개 모임인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복귀한 시진핑 주석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강국강군(强國强軍)’을 주장했지만 현대판 육·해상 실크로드 플랜인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뼈아팠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정부의 동부해안철도(ECRL) 사업 중단과 폐기 가능성이다. 미군기지가 있는 싱가포르를 거치지 않고 중동의 원유를 수송할 수 있는 이 철도 사업은 일대일로 구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런 입장을 간파한 마하티르 총리는 중국 방문 길에 "철도 분야에서 협력하고 싶다"면서 은근히 공사 단가를 낮추는 등 큰 양보를 기대하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일본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한 러·일 간 화물 수송로 정비에 나서고 있다. 실증 실험에 돌입한 것이다. 이 실험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할 경우 물류 수송 시간과 비용이 얼마가 드는지, 관세와 수출입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을 비롯해 철도를 이용한 화물 수송 때 진동과 기온 차이 등이 물품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조사하기로 했다. 일본이 시베리아 철도에 관심을 가진 까닭은 경제적 이익(해상보다 절반 이하의 시간이 걸린다) 외에도 일본령 북방 영토의 문제 해결을 위한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본의 구상에 대해 극동지역 경제 활성화를 꿈꾸는 러시아가 적극적이다. "시베리아 철도를 연장해 사할린에서 홋카이도를 잇는 철도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다. 다음 달 11~1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아베 총리가 참석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 이 논의가 보다 구체화되리라는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를 제안한다"고 했다. 이 구상은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몽골, 일본, 미국을 포괄해 동북아의 경제·안보 공동체로 확장하는 것인데 해당 국가들의 주요 정책과도 맞물린다.

 핵심은 남북한과 중·러 4개국이다. 지난 6월 우리는 북한의 찬성으로 국제철도협력기구(OSID) 정회원이 됐으므로 이 구상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기초는 이미 마련된 셈이고, 동북아 각국의 철도를 연결해 사람과 물자가 원활하게 통하면 인간·물적 통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경제·문화·평화 증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문제는 미국이다. 이 구상에 미국을 포함시킨 것은 동북아를 둘러싸고 중국과 전략적 경쟁 관계인 미국이 느낄 거부감을 최소화하려는 포석인데 지리적으로 역외자인 미국이 중국 중심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농후한 동북아 철도 연결을 반길 리는 만무하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 행정부는 대 중국 무역전쟁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등 경제 분야에서는 공세를 강화하고 있으나 지정학적 대결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무역 등 경제 분야에서 중국과 협조하면서 ‘피벗 투 아시아(아시아 중시 정책)’를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중국 봉쇄선을 재구축하려 미얀마에 손을 뻗친 바 있다.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가 ‘항행의 자유’를 내세워 미 해군을 투입한 것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그건 중국과 관련 국가들 사이의 문제로 미국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중국과 싸울 이유가 없다는 기조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체제뿐만 아니라 동북아 다자 안보 체제에 있어서도 미국은 빼놓을 수 없고, 미국의 협조와 관여 없이 ‘동북아 철도 공동체’는 무망한 일이다. 따라서 이 구상에서 미국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깊이 헤아려야 한다. 중국과 미국을 한 바구니에 넣는 건 어색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뜻대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심지어 문 대통령의 이 제안에 대해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이 고심 끝에 내놓았겠으나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는 지적은 백 번 지당하다.

 동북아에서 펼쳐지는 철도 사업의 삼국지는 과연 어떻게 될까? 중국횡단철도(TCR), 몽골횡단철도(TMGR), 만주횡단철도(TMR),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바이칼·아무르철도(BAM)가 우리 철도와 연결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다 정밀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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