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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종현 전 SK네트웍스 중국사장
# 타이완(臺灣)이 영어를 공식언어로 사용 추진

 최근 신선한 뉴스 하나를 접했다. 타이완이 2019년부터 공식언어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중국어(타이완 중국어는 본토 중국어와 달리 번체(繁體)를 사용하며 발음기호 역시 영어와 무관한 주음부호(注音符號)를 사용 중) 이외에도 영어를 공식언어로 사용해 2개 국어를 사용하겠다고 타이완 연합보가 보도했다. 지금까지 많은 국가들이 자국어와 영어를 공식언어로 사용한 경우는 많았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 경험 국가가 대부분이며 타이완 같이 영미의 식민지 경험이 없는 국가에서 영어 사용은 지금 동북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패권 경쟁의 단면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동북아 시대의 도래와 실학의 한자공용론(漢字共用論)

 우리는 피부로 잘 느끼는지는 모르겠으나,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문화권인 동북아의 중심지역에 살고 있다.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한 미국 대통령들도 앞 다투어 한중일 3국을 가장 중요한 시점에 방문하기도 하고 중국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 패권 경쟁을 위한 경제, 외교, 무역 분야의 각축 관련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이 같은 강대국 각축전에서 위치가 왜소해진 타이완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강화를 통한 국가 발전을 추구하겠다는 생존 전략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 학자로 당시 당쟁으로 점철돼 민생을 돌보지 않는 국가 정책에 실학이라는 새로운 트렌드(Trend)로 국가 개혁을 주장한 박제가(1750~1805)선생은 대표 저서인 「북학의」에서 한자공용론을 주창했는데 이는 당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청나라의 문물을 가급적 빨리 받아 들이지 않고는 국가의 존망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처절함에서 나온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실학자인 박지원(1737~1805) 선생 역시 청나라 연행단으로 중국을 방문할 당시 중국어는 전혀 몰랐으나 한자를 활용한 필담으로 청나라 석학들과 교류해 많은 경험을 하고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기행문인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남긴 점 역시 언어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한다.

 우리 나라는 현재 세계 12위권의 경제대국이며 군사력 역시 세계 10위권 이내로 평가되나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주변에 포진해 어느 나라 하나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호락호락한 나라가 없이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에서는 한국의 존재감조차 크지 않은 참담함을 느낄 때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일부 국제 정치학자들은 한국이 한국의 남북 통일 문제에서조차 주변국화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경우도 있다. 여하튼 우리는 지금 월드컵 축구의 죽음의 조에 비견되는 지정학적 위치인 동북아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숙명에서 살고 있다.

# 중국 유학시절의 추억

나는 1994년 회사에 재직 당시 국교수립이 이뤄진 중국에 유학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이미 30대를 훌쩍 넘긴 회사의 중견 과장이었고 중국어 공부 역시 전혀 공부한 적이 없는데도 학교의 행정착오로 초급반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상급반에서 공부하게 됐다. 당시에도 적지 않은 한국의 젊은 유학생들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발음조차 못해 항상 학급에서 최하위권 학생이었다. 그런데 3개월 정도 지나 1학기 종료 시점에서는 담임선생님이 내 수준이 학급에서 최고 수준으로 보이니 북경에서 최고 수준의 언어대학(語言大學) 3학년으로 편입하라는 제안을 받아 언어대학에서 2학기를 마친 배경에는 내가 가진 한자 능력이 큰 역할을 한 기억이 난다.

 나와 같이 공부하던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은 중문학과 졸업생 혹은 중문학과 고학년 학생으로 중국 체류 기간 역시 2~3년 이상 경과했으나 나를 놀라게 한 점은 이 학생들조차 한자교육을 받지 않은 세대로 고급 중국어 사용에 큰 걸림돌이 된 부분은 한자 능력 부족으로 오랜 학습에도 불구 나만큼의 유학 성과를 올리지 못했나 하고 생각한다.

 19세기에 중국이 무력하게 서구 열강에게 뒤처질 때 강유위(康有爲 1858~1927)를 포함한 많은 중국 지도자들은 일본 유학을 권했는데 이는 일본이 당시 서구문물을 적극 받아 들여 같은 한자 문화권에서 훨씬 적은 노력과 시간으로 이미 동양의 문화권에 체화한 일본의 문물을 받아 들이는 것이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라고 판단된다.

 우리나라는 1970년 이후 사실상 한자교육을 포기하고 있는데 주변의 중국, 일본 등 강대국의 국가 교류와 협력 기반을 스스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반문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서양의 많은 학생이 중국이나 일본에 유학이나 비즈니스하기가 어려운 것은 한자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한자교육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한자 사용이 한글 사용을 위축시켜 문화적으로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이 치열한 경쟁에서 한글 전용교육이 과연 시의적절한 정책인지 심각히 고민할 단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글 전용 교육은 약 1천500년 이상 사용한 한자에 대한 이해 수준을 대폭 낮춰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를 크게 위축시켜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에 학계에서 체계적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영향이라고 믿고 있다. 한자교육을 포기하는 것은 문화적 정통성 확립은커녕 스스로 지식의 무장해제로 문화 고립을 자초해 지역의 주변국으로 전락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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