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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박광섭 기자 ksp@kihoilbo.co.kr 2018년 09월 03일 월요일 제10면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TV화면으로 접했다. 바로 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박항서다. 지난달 29일 오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전에서 한국은 베트남과 일전을 펼쳤다. 박 감독은 한국이 아닌 베트남 벤치에 자리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을 도와 월드컵 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당시 박 코치는 황선홍, 홍명보 등 노장 선수들을 다독이던 ‘큰 형님’이었다. 월드컵 폴란드와의 1차전에서 황선홍이 첫 골을 넣고 그의 품으로 달려가는 장면은 아직까지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다. 박 감독의 운명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그것도 같은 해에….

2002년 10월 10일 밤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4강전에서 한국은 이란과 승부차기까지 간 접전 끝에 무릎을 꿇었다. 당시 지휘봉은 박항서 감독이 쥐고 있었다. 저조한 성적에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해졌고 그는 결국 경질됐다. 히딩크 감독에 이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 3개월 만이다. 이후 그는 다시는 대표팀과 연을 맺지 못했다. K리그 감독을 맡으며 2007년 당시 경남을 리그 4위로 이끌며 다시 주목받기도 했지만 그 뒤 상주 상무와 3부 리그 격인 창원시청을 거치며 축구 인생의 내리막을 걸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베트남의 국민 영웅이 됐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아시안게임 8강전에서 시리아를 연장 접전 끝에 1-0으로 이기면서 사상 첫 4강에 올랐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2위로 동남아 축구 약체로 분류되던 베트남이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다. 베트남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전국 수백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고, SNS에서는 박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글이 넘쳐났다. 박 감독은 4강전에 앞서 각오를 밝히며 "조국을 사랑한다. 그러나 지금은 베트남 감독이다"라고 했다. 경기 시작 전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는 태극기를 향해 손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는 히딩크 감독을 통해 꿈을 이뤘다. 베트남 사람들은 박항서 감독을 통해 ‘꿈은 이루어진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베트남을 향할 때 박 감독은 ‘한국만 아니면 된다’는 심정으로 영문 이력서를 꾸몄다고 한다. 너무 쉽게 내치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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