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1.50%로 동결했다. 작년 11월 금리를 올린 이래 9개월째 변동 없이 가고 있다. 고용참사와 양극화 심화, 제조업과 소비 위축 등 전반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청와대 바람에 어긋나고 한계가구 파산의 도화선이 될 지도 모르는 금리인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이러다가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것도 모자라 굴삭기까지 동원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저금리로 급증한 가계부채를 조정하고, 미 금리인상에 따른 자본유출에 대비하려면 금리인상에 나섰어야 했다. 우리 경제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데 미 금리와 역전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될 순 없다. 설상가상으로 성장률이 추가 하향 조정되거나 경기의 하방리스크까지 발생하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충격에 노출될 수도 있다. 그때 가서 뒤늦게 뒷북치는 식으로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할 땐 준비되지 않은 가계와 중소·중견 기업은 순식간에 패닉 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물론 기준금리를 동결할 수밖에 없었던 고충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미국이 자신 있고 줄기차게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경제 호황과 높은 고용률’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구현되지 못한 ‘정책적 실패’가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금통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장 친화적인 정책은 물론이요, 기본적인 규제개혁과 노동개혁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장에 개입하고, 기업을 압박하며, 정부 몸집만 키웠다. 저금리라는 개혁의 호기를 허송세월하더니 이제는 정책의 부작용마저 재정 지출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나라 경제를 책임진 이들은 모두 대오각성해야 한다. 금통위도 이번 기회에 본연의 역할을 돌아봤으면 한다.

 수개월 앞을 내다보며 이뤄지는 선제적 조치가 기준금리 결정인데, 한미 양국 간 금리가 역전된 지난 6개월간 우리 경제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 혹여라도 정치성이 배어 들어 그런 거라면 정말 큰 일이다. 금리인상은 모두에게 고통스럽고 인기 없는 결정이다. 임명권자의 뜻을 거스르는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독립성이 보장돼 있는 것 아닌가. 안타깝게도 금통위는 이런 특권을 이번에 너무 쉽게 거둬들인 것 아닌가 싶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