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복싱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한 오연지의 성과는 눈부시지만 한국 복싱의 현실은 엄혹하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 남자 7체급, 여자 3체급 10명이 출전했으나 오연지 한 명만 메달을 따냈다. 준결승에 진출한 선수는 오연지 한 명뿐이었고, 한국 복싱이 아시안게임에서 메달 1개에 그친 것은 처음이다.

한국 복싱은 1954년 마닐라 대회 박금현을 시작으로 올해 자카르타-팔렘방 오연지까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59개를 휩쓸었다. 사격(66개)에 이어 한국 스포츠 가운데 가장 많은 금메달을 안긴 종목이 복싱이다.

하지만 1998년 방콕 대회를 기점으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4년 전 인천 대회에선 신종훈, 함상명이 12년 만의 금메달을 따내는 등 메달 6개를 수확하며 저력을 과시하는 듯했다. 하지만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선 메달 1개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한국은 젖줄인 아마추어 복싱이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프로 복싱도 함께 무너졌다. 2007년 7월 챔피언 벨트를 반납한 지인진을 끝으로 세계 챔피언 명맥이 끊겼다. 198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복싱 붐이 사라지면서 선수층은 얇아졌다. 지금 한국 복싱은 뛸 아예 선수가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또 복싱계 파벌 싸움에다 복싱 외교력도 크게 위축돼 국제대회에서 매번 편파 판정의 희생양이 됐다. 그 사이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중국이 아시아 정상으로 성장했다.

한 국가대표는 같은 체급의 우즈베키스탄 선수가 훈련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처음 보는 선수라고 말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은 선수층이 워낙 두터워서 막판까지 누가 나올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주먹 하나만을 믿고 꿈을 키워 가는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체급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국내에 경쟁자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 선수가 우즈베키스탄과 같이 치열한 내부 경쟁을 거치며 실력을 끌어올리고 근성을 키운 선수를 대적하기는 쉽지 않은 게 슬픈 현실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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