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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 인천지부 부회장
비엔나 벨베데레궁전의 미술관에서 구스타프 클림튼의 ‘키스’ 그림을 보러갔다. 유독 관람객이 많이 몰려있는 그림이다. 작품은 몽환적인 분위기로 에로틱했고 실제로 금가루를 사용해서 화려했다.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키스하는 연인의 행복이 황홀함을 넘어 슬픈 비가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묘한 아픔이 가슴을 관통했다.

 클림튼은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았었고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졌다가 ‘사랑’이란 작품을 그리면서 재기했다. 제목처럼 사랑은 단순히 행복뿐이 아님을 보여준다. 행복한 연인들 뒤쪽에 그려 넣은 기이한 얼굴들은 행복의 대척인 불행을 암시하는 불안 심리를 묘사한 것이라 한다. 고뇌와 희열은 샴쌍둥이 같아서 멀게 가깝게 간격을 조종하며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득 프라도미술관에서 본 고야의 그림이 떠올랐다. 프라도미술관 입구 정원에 고야는 동상이 돼 고뇌에 찬 얼굴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찬미한답시고 그를 올려다보며 경의를 표한다.

 "이승의 생을 마감하고 물러났으면 잊혀지는 게 보상 아닌가?"

 곡절 많은 한평생을 돌아보며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 고야는 달갑지 않아 심기 불편을 시위 중임이 분명하다. 좋아했던 프랑스와 앞선 정신으로 찬양했던 진보는 그에게 인간성 말살이란 배신을 던져주었다. 그의 휴머니즘은 여려서 휴식이 필요했다. 귀 멀어 세상과 단절한 뒤 별장인 귀머거리 집에서 잊혀 버려졌던 시간에 그는 처절하게 외로웠고 뇌리에 박힌 비참한 기억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사람들은 고야의 그림 중 ‘옷 입은 마하와 옷 벗은 마하’를 대중적으로 떠올린다. 나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개’가 가장 강렬하게 기억된다. 블랙 페인팅 시리즈로 유명한 귀머거리 집 벽에 그린 벽화 중의 하나다. 사람들은 일생을 살면서 많은 인생유전을 거친다. 좋든 나쁘든 생에 영향을 미치고 가치관에도 변화가 온다. 고야의 초기 작품들은 명랑하고 밝다. 로코코풍의 낭만과 풍속화 같은 그림들은 경쾌하고 즐겁다. 그림 속의 이미지가 환락의 덧없음을 나타낸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내면은 적어도 행복했다. 그는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가졌고 현실은 그에게 끔찍한 고문을 가했다. 나폴레옹 군대가 쳐들어와 항거하는 마드리드 수비군을 진압한 다음 날인 5월 3일, 스페인 궁전 앞에서 5천 명의 사람을 처형했다. ‘1808년 5월 3일’은 그 현장을 목격한 고야가 광기의 살육현장을 그린 그림이다.

 음모와 광기의 세상으로부터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고요가 찾아오자 고야는 시대를 증언할 그림을 그린다. 그는 말년에 살았던 귀머거리 집 벽에 공포, 좌절, 잔인함, 음모 같은 끔찍한 내면을 그린 검은 그림들을 벽화로 남겼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눈빛과 흐트러진 백발은 잡아먹히는 자식보다 더 공포에 절어 있어 처참하다. 내게 충격으로 다가온 그림 ‘개’는 나를 하염없이 젖게 만들었다. 그림 앞에 선 순간, 이유도 없고 설명도 안 되는 눈물이 솟았다. 다리가 꺾이면서 힘이 빠져 푹 주저앉게 만든 그게 무엇인지 생각해볼 염도 없었다. 화면 전부를 차지하는 망망대해인가 하면 모래바람 휘몰아치는 황무지 같기도 한 공간, 검은 장벽 위로 개는 겨우 목만 내밀고 있다. 뒤로 힘없이 젖혀진 귀가 두려움에 주눅 든 개의 마음을 보여준다. 한때 위대한 꿈을 꾸었을 눈동자는 빛을 잃었고 꿈을 꿀 수 있어 빛났던 배경은 모래바람이 돼 황량하다. 배회하는 중인지 이상향을 찾아가는 중인지, 화가는 얼마나 절박했을까? 파드닥 아파오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그림을 쳐다보고 있었다. 클림튼에서 고야로는 섬광처럼 순식간이었다. 마음이 이입돼서다. 한동안 버거운 현실에 갇혀서 내려놓지 못하고 안절부절 지냈던 시간. 긴 터널은 힘겨웠다. 서 있는 고야를, 클림튼을 편하게 앉혀 드리고 싶다. 그리고 나도 앉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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