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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도 이(李)작전

강덕우 (사)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9월 06일 목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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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사)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얼마 전 영화로 선보인 인천상륙작전의 X-Ray작전은 옹진군 영흥도를 중심으로 한 실제의 첩보작전이었다. 켈로부대가 등장하고 팔미도등대의 점등이 이들로부터 이뤄져 9·15인천상륙작전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전쟁의 역사에는 전쟁이 갖는 비이성적 구조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 전쟁이 어떻게 기록되느냐의 여부에 따라 명암이 교차할 수밖에 없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때로는 작전의 성공적 완수보다 그를 뒷받침하는 보이지 않는 희생이 때로는 더 값져 보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X-Ray작전이 그러했듯, 이 작전의 성공을 위해 덕적도에서 행해진 작전이 바로 이(李)작전이다(Operation Lee).

 북한의 전면 남침이 있은 지 50여 일이 지난 8월 중순, 유엔군의 참전 지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전력의 열세로 남한의 약 80%가 북한군의 세력하에 들어갔다. 마산·대구·포항으로 이어진 전선에서는 연일 일진일퇴의 공방이 거듭되는 가운데 전투는 더욱 치열해져 갔고 낙동강 방어선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최후의 저지선이 됐다. 한국 해군은 해안봉쇄, 경비, 도서방위 등 대체로 방어적인 성격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7월 말부터 점차 공세적 성격의 작전을 시도하기 시작했고 8월에 들어서는 서해와 남해의 여러 섬에 소규모 기습상륙을 단행했다. 유엔군은 한국 해군에게 인천과 그 인근 해역에 대한 정보 수집과 유엔 해군의 대형 함정이 수행할 수 없는 연안·도서 근해의 작전을 일임했다. 서울과 인천, 경기지역에 주둔한 북한군 부대의 병력 규모 등 첩보와 서해안 지역의 조석(潮汐) 등 해상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덕적도 탈환은 최우선의 과제가 됐다.

 8월 16일 손원일 해군 참모총장은 해군 702함 함장 이희정 중령에게 덕적도를 탈환하고 적을 섬멸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미 극동사령부는 이 작전을 이희정 함장의 이름을 따서 이(李)작전(Operation Lee)이라고 명명하고 영국 순양함 케니아와 캐나다 구축함 아타바스칸 등 두 척을 지원했다. ‘이(李)작전’은 111명으로 구성된 육전대(陸戰隊)가 덕적도 옆에 있는 문갑도에 기습부대를 먼저 상륙시키면서 개시됐다.

 기습부대는 문갑도를 점령하고 있는 공산세력의 인민위원회 사무실을 급습, 간부들을 연행해 덕적도를 위시한 근처 섬들의 적정(敵情)을 수집했고 이어 순양함과 구축함의 함포 지원 사격에 힘입어 덕적도 탈환에 성공했다. 인민군에게 협조했던 민간 조직은 반공적인 청년들로 구성한 대한청년단으로 교체됐다. ‘동경 공동발 대한통신 섭외국’은 8월 19일 오후 4시 15분 특별 발표를 통해 "서해안에서 한국 해군부대가 18일 아침 연합군의 포격에 힘입어 인천 서해의 덕적도 동쪽 해안에 상륙해 진리(鎭里) 부락을 점령하였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덕적도 점령 이틀 뒤인 20일에는 인근 대이작도에서 적색분자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소탕했다. 그러나 덕적도가 거리가 너무 멀다는 지적에 따라, 인천에 훨씬 가까운 영흥도를 점령하는 방안이 채택됐다. 해군 육전대는 또다시 영흥도 정벌에 나섰는데 이 섬은 인천의 인근으로 소수이지만 북한군이 배치돼 있었고, 게다가 남로당의 실세로 전쟁 중 서울시장인 이승엽의 고향이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이 섬의 적색분자들은 극렬분자들이었다 한다. 20일 오전 6시 90명의 육전대는 함포 사격의 지원을 받아 영흥도 북쪽 내리 해안에 상륙, 이로써 X-Ray작전의 거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덕적도는 덕물도라는 이름으로 삼국시대에 등장했고 고려후기에 이르러 덕적도로 고쳐 부르고 있는데, 당나라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중국 산동성을 떠나 덕물도를 경유했고 고려시대 중국과 통교 당시 이곳을 지나야 했던 해상교통의 중심지였다. 1930년대 ‘민어파시’로 명성을 날렸던 덕적도는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최근 수산업의 국내외 환경변화와 수족자원 고갈로 주민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서해 해상교통의 중심지로서 또 무궁한 스토리텔링의 주무대로서 인천의 섬이 갖는 역할과 진가가 역사와의 조우(遭遇)를 통해 드러날 것으로 확신한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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