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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인천문인협회 이사
무더운 여름,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위 단추를 연다. 이렇게만 해도 체온이 섭씨 1도는 내려간다고 한다. 생각 같아선 단추를 한두 개 더 열어 젖히고 싶다. 단추는 의복에 사용하는 작은 도구에 불과하지만 숫한 사연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단추의 역사는 기원전 6000년 고대 이집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양쪽의 옷자락을 뼈나 금속 핀으로 채워놓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단추는 남성 전유물로 여성복에는 없었다. 하지만 영국 패션이 유행하며 남녀공용이 됐고 언제부터인가 남성 옷은 우측에 여성은 좌측에 단추를 단 패션이 대세가 됐다. 일본에는 ‘다이니보탄(두 번째 단추)’이라는 문화가 있다. 졸업식 날 남학생이 교복 상의의 두 번째 단추를 떼서 연모해 온 여학생에게 주는 풍습이다. 두 번째 단추가 심장에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바친다는 뜻일까. 단추는 개성을 자랑하는 장식품과 사치품의 역할뿐 아니라 명예와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13세기께 유럽에서는 금은보석으로 단추를 만들어 지위나 신분을 과시하는데 사용했다. 루이14세는 단추 가격만도 60만 달러에 달하는 옷을 맞춰 입었다고 한다. 프랑스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수아 1세는 상의에만 1만3천600개의 금단추를 달았고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48개의 금단추를 단 장갑을 끼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죽했으면 사치스러운 단추 수를 규제하는 법령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을까. 1770년에 위스터는 저렴한 금속단추를 발명했다.

 1905년엔 베이클랜드가 플라스틱 단추를 발명한 이후 단추는 가격이 더욱 하락하며 신분 과시 도구가 아닌 실용적인 의복의 구성물이 됐다. 단추를 연다는 것은 옷을 벗는 전초행위라며 아무리 더워도 상의 단추를 열지 않는 공직자도 있다. ‘옷을 벗는다’는 말을 직위 해제 당한다는 말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1895년 1월, 프랑스에서는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의 공개 군적 박탈식이 있었다. 요즘 세상에 자주 회자되고 있는 탄핵의 과정이랄 수 있겠다. 적대국 독일에 군사정보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종신유배형을 선고받은 그는 육군사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군적 박탈식에서 계급장과 단추를 강제로 뜯기는 수모까지 당했다. 군인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치욕적인 인격 모독은 없을 것이다.

 단속 혹은 채비를 잘 하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단도리를 잘 하라!’라는 말은 단추를 잘 채우라는 무언의 경고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와이셔츠 위 단추를 채우고 넥타이로 마감하는 남성들은 단정하고 빈틈이 없어 보인다. 반면에 위 단추를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 풀어 헤치고 다니는 남성은 시원스럽기보다 불량스러워 보인다. 마치 과거 중·고등학교 교복의 상의 단추를 풀고 뒷골목을 활보하던 문제아들을 연상케 한다. 속가슴이 드러날 정도로 위 단추를 풀어놔 맞은편 상대방이 어디로 눈길을 돌려야 할지 난감하게 만드는 여성은 불량스럽기보다 헤프게 보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시간에 쫓기거나 깜박 잊고 바지 앞 단추를 연 채 활보하는 남성에게 다가가 "동대문이 열렸다"고 귀띔해주는 속삭임엔 "칠칠치 못하게~"라는 색깔이 묻어 있다. 신혼이나 잉꼬부부들이 걸치는 가운 모양의 잠옷엔 단추 대신 허리띠가 매어 있다. 단추를 여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란다. 과거 등 뒤에 있던 단추가 앞쪽으로 배열된 것은 타인의 도움이나 규제를 떠나 스스로 자제하고 절제하며 제 인생을 제가 책임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 물불 안 가리고 결혼을 서두르는 자식에게 부모는 인연의 첫 단추를 잘못 끼면 일생을 망친다며 제발 신중히 행동하라고 타이른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후 부모의 애타는 호소가 담긴 단추를 여닫으며 비로소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철부지도 있다. 의복의 단추는 어긋나게 꿰어진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다시 끼우면 되지만 흐트러진 인연의 단추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무더운 계절, 거추장스럽게만 여겨지던 작은 단추가 인생에 던져주는 지대한 교훈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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