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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구 청운대학교 대학원장
찬란하게 빛났던 대제국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어제 거대했던 여당이 오늘은 사라질 것 같은 작은 야당이 된다. 천하를 호령했던 인물이 영어(囹圄)의 몸이 돼 연민을 자아내게 만든다. 인물들이 비극적 파국을 맞는 모습들은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Sophocles, 496-406)의 작품,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등에 선명하게 부각돼 있다. 기원전 5세기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시선을 붙들고 있다.

 「오이디푸스 왕」의 오이디푸스는 ‘부은 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오이디푸스가 테바이 왕국에서 아버지에 의해 광야에 버려질 때 발이 꼬챙이에 꿰어 버려졌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왕자이면서 버려지는 운명에 처한 것은 장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취할 운명이라는 신탁(神託)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버려진 아이는 이웃나라에서 성장해 다시 테바이 왕국으로 돌아오는 신탁의 저주를 행(行)하고 있지만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오이디푸스의 이름에는 ‘알다’라는 뜻도 함의돼 있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의식의 차원에서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존재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이디푸스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되었을 때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광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욕망의 어두운 실체를 바라 본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상적 삶의 양상이라고 할 수 있는 ‘상징계적 질서’에 속아야 한다고 라캉(Jaques Lacan)은 말한다.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상징계적 질서’를 받아들이고, 속아 넘어가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처음부터 죽음을 마주한 존재다.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체를 매장해야 한다고 하면서 시작된다. 국가의 법을 어기면서 오빠의 매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독하게 대드는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죽고 그의 아들 폴뤼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왕위 자리를 놓고 결투를 벌인다. 안티고네의 외삼촌 크레온은 테바이 왕국의 섭정자가 된다. 에테오클레스는 크레온의 편에 서고, 폴뤼네이케스는 외국 군대를 끌어 들여 권력투쟁을 벌인다. 그러나 싸우다가 둘이 동시에 죽게 되자, 에테오클레스는 성대히 장례식을 치러주고, 폴뤼네이케스의 시체는 매장하지 말도록 크레온은 명령한다. 크레온의 말은 그 시대 상황에 타당한 논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안티고네가 목매달아 죽자 약혼자였던 크레온의 아들 하에몬은 칼을 빼들고 자결하고, 아들의 주검을 본 크레온의 아내도 자살한다. 크레온은 현실적으로 타당한 논리와 질서를 따르다가 테바이 왕국을 몰락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다 이렇게 몰락으로 치닫는다. 기존의 허접한 질서가 몰락하지 않으면 새로움도 만들어 낼 수 없음을 보여준다.

 헤겔은 안티고네라는 주인공에 대해서 "천상의 존재와 같은 안티고네, 지상에 존재한 가장 고매한 인물"이라고 찬미했다. 그러나 안티고네의 저항은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와 같은 혁명의 목소리와 겹쳐지게 됐고, 어떤 억압에도 굴복하지 않는, 혁명을 위한 순교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섬광(閃光)같은 ‘아우라’가 존재한다고 라캉은 말한다.

 다양하게 「안티고네」를 읽어낼 수 있지만, 오빠를 묻어 주어야겠다는 안티고네와 반역자를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크레온은 그 시대의 윤리적, 정치적 요청을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하거나 과잉된 모습의 존재들이다. 그 시대의 담론을 그대로 수용하는 크레온의 모습에서보다는 로고스적 논리도 변변찮아 보이는 안티고네에게 우리는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완전히 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몰락의 윤리학, 정치학’에 「안티고네」가 우리의 시선을 이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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