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논설실장.jpg
▲ 원현린 주필(主筆)
스스로 생을 달리하는 자살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 오늘은 생명의 존귀함과 날로 급증하고 있는 자살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공동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나서 정한 ‘세계자살예방의날’이다. 각 국가가 자살예방의날을 정하고 있다는 것은 대다수의 나라에서도 자살이 커다란 사회 문제화가 돼 있다는 얘기다. 우리도 지난 2003년 9월 10일을 ‘세계자살예방의날’로 제정해 놓고 해마다 기념식을 갖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도 갖가지 자살방지 프로그램을 마련, 자살예방 운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가적 차원에서 귀중한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하에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약칭 ; 자살예방법)’을 제정하기까지 했다. 입법의 목적은 "자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책무와 예방정책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함"이다. 동법은 제16조에서 "자살의 위해성을 일깨우고 자살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매년 9월 10일을 자살예방의날로 하고, 자살예방의날부터 1주일을 자살예방주간으로 한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자살예방의날 취지에 적합한 행사와 교육·홍보사업을 실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는 조항까지 둬 아예 자살예방의날과 주간, 추진해야 하는 사업까지 법으로 정해 놓고 시행 중에 있다.

 하지만 좀처럼 줄지 않는 자살 수치다. 어제도 오늘도 자살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 자살자가 평균 36명꼴로 나타나고 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자살률의 2.4배에 이른다고 한다. 여전히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하루 자살자 수는 현재 중고교의 한 학급 학생 수와 맞먹는 숫자다. 이 땅에 이보다 더 애달픈 일은 없을 것이다.

 정부는 형식적인 연중행사의 하나로 끝낼 것이 아니다. 자살예방 사업 관련 예산도 넉넉히 세워 자살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지속적인 정책이 시급히 요청된다.

 ‘자살(自殺)’의 사전적 풀이는, 행위자가 자신의 죽음을 초래할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생명을 끊는 행위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자살, 그것은 죄악이다. 스스로는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속한 한 가정이 불행에 빠진다. 나아가 국가 사회적으로도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생명권(生命權)이야말로 천부불가양(天賦不可讓)의 권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할 권리는 없다. 나는 본란 등을 통해 누차에 걸쳐 ‘극단적 선택’만은 안 된다고 당부하고 호소해 왔다. 삶은 어차피 선택의 연속이다. 수많은 선택 중에 왜 하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가. 인간은 누구나 복(福)된 생을 바란다. 우리는 다섯 가지 복, 즉 오복(五福)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 오복에 대해서는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 나온다. 첫째는 수(壽)다. 오래 사는 장수(長壽)의 복을 말한다. 둘째는 부(富)다. 풍요롭고 부한 삶을 사는 복이다. 셋째는 강령(康寧)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삶을 누리는 복을 말한다. 넷째는 유호덕(攸好德)이다. 선덕(善德)을 쌓는 복을 말한다.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이다. 한평생을 잘 살다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복을 말한다.

 한때 인기리에 상영됐던 영화 ‘타이타닉’ 마지막 장면이 떠 오른다. 북대서양을 항해하던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딪혀 침몰했다. 차디찬 바다 한복판에서 청년 잭이 애인 로즈의 꺼져가는 생명을 지키면서 "잘 들어요, 로즈! 당신은 지금 죽지 않아요. 멋진 인생을 살아갈 거고 아기들도 많이 낳을 거예요. 그 애들 자라는 것도 다 보고요. 당신은 오래오래 살다가 편안한 침대에서 죽게 될 거예요!"

 상기한 영화의 한 대사에서처럼 많은 자손을 낳아 그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오래오래 살다가 편안한 침대에서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이 곧 ‘고종명’이라 하겠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 중 하나가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불러도 대답 없을 때다. 아마도 가족의 자살이 그 중 하나일게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고 누누이 얘기했다. 어떻게 이 땅에 온 생명인데….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