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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구역에 살던 그 소년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2018년 09월 11일 화요일 제10면

소년이 아홉 살이 되던 해는 특별했다.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살고 있는 주황색 연립주택(빌라)으로 이사를 갈 수 있어서였다. 재래식 화변기가 외부 화장실에 따로 있고 일년 내내 볕이 들지 않는 단독주택 반지하는 아무래도 소년의 앳되고 밝은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연립주택 2층에 위치한 소년의 새 집에는 세 개의 방과 양변기가 달린 화장실, 생애 처음으로 소파를 놓을 수 있는 거실이 있었다. 땅과 붙어 있는 기와집이나 붉은 색 벽돌집에만 살아 본 소년에게는 지상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게 됐고 생일잔치를 하거나 초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년이 열두 살이 될 무렵 10개 동 규모로 있던 이 연립주택은 재개발 구역이 됐다. 건설업자가 나타나 2층짜리 빌라를 25층짜리 최신 아파트로 바꿔 주겠다고 한 것이다. 감정평가와 보상이 시작됐고 일부는 새 아파트에 입주할 희망을 품고 ‘딱지(입주권)’를 챙겨 일찌감치 이사를 갔다. 주택형이 작았던 일부는 현금 청산을 당했고 목돈이 없어 당장 전월세 집을 구할 수 없었던 소년의 집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주와 철거가 집행되는 2년의 시간들은 소년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창문이 깨진 빈집에는 낯선 형들과 누나들이 드나들면서 검은 색 비닐봉지에 공업용 본드를 짜넣어 불고 있었고 노숙자들의 음주와 폭행, 강간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소년이 살던 빌라의 앞 동은 처참하게 망가졌고 이윽고 아랫집과 옆집도 이사가면서 건물 한 동에서 소년의 집에서만 불빛이 새어 나왔다. 흑심을 품은 낯선 이들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소년은 매일 밤 문을 단속하고 또 단속했다. 하지만 도둑이 들어오는 상상이나 환각 상태에 빠진 형들이 거실 창문을 부수고 침입하는 꿈은 멈추지 않았다.

 부서지고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생활 집기류를 피해 칠흑같이 어두운 골목을 다치지 않고 통과하려면 내달릴 수도 없었다. 감당하기 힘든 고역의 시간은 급전이 필요한 소년의 집 사정을 아는 외지인이 딱지에 웃돈을 얹어 매수하면서 끝이 났고 소년은 다시 음습한 반지하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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