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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 - 엄마와 딸

김진형 동국대 강사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9월 14일 금요일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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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한 해 세월이 더해질수록 엄마와 딸처럼 좋은 관계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공감대가 늘어나고 함께 하는 시간이 잦아질수록 모녀관계는 친구 사이로 변해 간다. 하지만 사사건건 부딪치던 시절도 있었다. 사춘기 시절이 특히 그렇다. 그 당시처럼 속 썩이던 딸도 없었으며, 나를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엄마 같았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레이디 버드’는 질풍노도 시기의 딸과 엄마의 복잡한 관계를 그린 작품으로, 깨닫지 못했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부에 위치한 새크라멘토는 인근 유명 도시인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평범한 동네가 바로 새크라멘토였다. 대학 입시를 앞둔 여고생 크리스틴은 자신의 고향과 닮은 평범한 아이였다. 특별히 뛰어난 것이 없는 이 소녀는 자신의 고장만큼이나 무난한 삶이 싫었다. 대부분의 십대가 그러하듯 그녀는 독특하길 원했다. 그래서 대학만은 집 주변이 아닌 화려한 동부의 뉴욕으로 가고 싶었다. 반면 크리스틴의 엄마는 학비에 대한 부담으로 집 근처 시립대에 입학하길 바랐다. 대학을 보는 관점부터 모녀는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달랐다.

그러나 한 발 뒤에서 보면 두 사람은 데칼코마니처럼 꼭 닮아 있었다. 키, 체형과 같은 외적인 부분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상대방의 가슴을 콕 쑤시는 아픈 말을 내뱉는 강한 성격까지. 그러나 실상은 두 사람 모두 배려심이 깊고 따뜻한 속마음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크리스틴은 자신과 닮아 있기에 엄마를 더욱 좋아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엄마의 삶을 어린 크리스틴은 닮고 싶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초과근무를 하며 목욕수건 개수까지 제한하며 억척스럽게 사는 모습이 부끄럽지는 않지만 자랑스럽지도 않았다.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주길 바라는 크리스틴은 뉴욕 소재의 대학에 입학해 얼른 지루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은 이뤄졌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뉴욕은 기대와는 달랐다. 그저 복잡하고 바빠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포근하게 감싸주던 둥지를 벗어난 후에야 크리스틴은 당연해 보이던 가족과 고향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닫는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 대신 자기가 만든 이름으로 당당하게 불리기를 바라는 여고생의 1년과 함께 하는 일종의 성장영화다. 누구나 겪는 사춘기 시절을 조금 더 격렬하게 통과하는 듯 보이는 이 소녀의 시간 속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촘촘하게 배열돼 있다. 우선 학창시절에 가장 소중한 추억을 공유하는 절친과의 우정과 다툼,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 진학에 대한 고민,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연애담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자연스럽게 한 소녀의 인생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기존의 10대 성장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지점은 이성관계가 성장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크리스틴은 결국 사랑을 통해 인생을 배우지만 그 사랑의 핵심에는 남성이 아닌 어머니가 서 있다. 비록 엄마가 보여 주는 사랑은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감동적인 장면들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사소한 다툼과 희로애락 속에 숨겨진 변함없는 관심이야말로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날들의 원동력임을 영화 ‘레이디 버드’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녀관계를 통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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