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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는 회색도시의 마지막 비빌 언덕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9월 14일 금요일 제11면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jpg
▲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경인전철을 이용해 서울에서 부천을 지나 인천에 다다르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어디가 인천인가? 창가에 전개되는 풍경에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저 건물과 도로, 그 사이에서 자동차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데 멈춤도 한가로움도 없다. 그래서 그런가? 자신의 위치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부평에서 인천시청을 지나 연수구로 지나가는 길 좌우를 높이 띄운 드론으로 촬영해 보자. 우리는 어디가 어디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을까? 경인철도 동암역과 문학경기장 사이에 중앙공원이 가늘고 길게 보이겠지. 중앙공원 지나 선학동에 약간의 밭과 2014년 제17회 아시안게임에 사용한 경기장이 보이면 줄곧 고층아파트로 점철될 게고, 좁디좁은 바다를 다리로 건너면 회색으로 펼쳐지는 송도신도시에 다다를 것이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회색 건물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할 텐데, 건물이 들어서기 전엔 어떤 모습이었을까?

 중앙공원은 판자촌이 밀집돼 있었지만 오래 전 계획된 공원을 위해 1990년대 초 과감히 철거했기에 녹색 띠를 가늘게 제공한다. 크고 작은 도로가 8토막으로 단절했어도 이용하는 시민이 많다. 앞으로 잘 연결한다면 소중한 공원으로 자리 잡을 텐데 복판을 난폭하게 차지한 예술문화회관은 공원의 연결을 회색으로 가로막는다. 거대한 문화시설이 공원을 차지해도 무방한 법이 1980년대에 있었나? 어떤 무도한 자가 그 지점을 공원구역에서 해제했을까?

 선학동의 아시안게임 부지는 우리가 흔히 그린벨트라 말하는 개발제한구역이었지만 규모가 큰 체육시설단지로 바뀌었다. 아시안게임을 위해 희생된 셈인데, 그린벨트에 체육시설은 허용된단다. 하긴 조건을 만족하면 골프장도 가능하다는데, 골프도 운동인가? 운동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할 적이 많지만, 골프를 대중이 즐기는 운동으로 느닷없이 간주한 행정의 태도는 확장되는 회색도시에서 지쳐가던 시민의 욕구와 거리가 먼 게 사실이었다.

 소설가 황순원이 ‘소나기’를 집필할 당시, 여름 뙤약볕이 도시를 데우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바탕 소나기가 거기를 식혀주었을 것이다. 1980년 이전의 인천도 비슷했을 텐데, 올 여름의 폭염 기간에 소나기는커녕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비를 뿌리게 할 녹지와 습지가 주변에 없으니 당연한데, 내년 이후도 비슷하겠지. 근교 농어촌까지 잠식한 개발은 인천시민 숨 막히게 만드는데, 그 사이사이의 그린벨트도 맥없이 개발됐다.

 유럽의 경험을 바탕으로 1971년 도입한 우리의 그린벨트는 도시의 무질서한 확장을 억제하고 시민의 건강한 생활환경을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공공성을 빙자한 힘 있는 자의 요구로 잠식돼 왔다. 누군가 곶감으로 묘사하던데, 하나 둘 빼어먹다 거의 사라진 곶감 신세가 됐다. 그런데 알량한 그린벨트마저 개발제한에서 풀어 주택을 짓자는 발상이 나온다. 그것도 촛불이 잉태시킨 정부에서. 주택이 진정 모자라 서울과 수도권 일부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한다고 보는가? 자동차로 떠밀리던 도로를 넓혔더니 뻥 뚫리던가? 도시의 주권은 주택업자가 소유하는가?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는 주거공간의 50%를 녹지로 조성하려 노력한다. 도시를 녹색으로 완성하려는 의지인데, 그를 위해 아파트를 헐어내 텃밭을 조성하고 자전거를 위해 차도의 폭을 좁힌다. 주차장을 더 만들라는 일부 민원을 자전거 전용도로로 대응한 도시는 시민의 지지를 끌어올렸다. 외곽의 녹지에서 시작하는 바람으로 빌딩과 도로에서 발생하는 열을 씻어내 해결한 사례도 있다. 그를 위해 그 도시는 간선도로를 녹색의 공원으로 바꿨는데 우리는 숱한 상처 잃은 그린벨트마저 없애려 든다.

 회색으로 점철되는 도시에서 그린벨트는 이웃과 정을 나누려는 시민들의 마지막 비빌 언덕이다. 앞뒷집 이웃과 인사는커녕 기억조차 허용하지 않는 아파트를 위해 허물어낼 녹색이 아니다. 녹색을 잃은 도시에서 시민의 정서는 삭막해진다. 5분 걸어 반가운 이웃을 만나는 공원이 있는 도시의 범죄율은 익명의 회색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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