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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권홍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소장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이후로 늘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표현들이 있다. 보은 인사, 지방의회 의정비 인상 그리고 해외 연수가 그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1991년부터 지방의회가 다시 열렸고, 1995년부터 시작된 단체장 선거도 벌써 7회가 됐으니 역사적으로도 충분히 성숙할 시간이 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방자치단체장과 의회는 여전히 똑같은 문제로 시민들에게 실망감을 주고 있다. 선거라는 것이 후보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기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자신과 정치적 소신을 같이 하는 사람과 임기 동안 일을 같이 할 사람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작은 단위의 군, 구라 하더라도 전문적이거나 정무적으로 판단해야 할 일들도 많다. 어느 정도 인원까지는 구청장이나 군수도 재량껏 임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성 때문에 단체장과 견해를 달리할 수도 있고, 단체장과 같이 해온 시간이 없어서 손발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광역이든 기초든, 최소 필요한 범위 내에서 단체장의 소신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인력이 함께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사람을 쓰는데 나름의 기준이라는 것이 있다.

 인천의 어느 자치구도 이런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별정직 공무원 5명을 비서실에 증원하겠다는 것을 그나마 구의회가 부결시켰다. 구의회가 단체장의 권한 남용 위험을 적절히 견제하고 제한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기관 상호 간의 독립과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5명을 증원해야 할 필요성과 타당성이 충분히 인정되고 능력에 맞는 사람이 있다면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인천시와의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인천시보다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별정직이나 계약직 수를 제한하는 것도 옳지 않다.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지방자치제도의 꽃은 역시 의회다. 의회가 자기 역할과 책임을 다하면 단체장에 대한 견제는 물론 해당 자치단체가 올바르게 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영국식 지방자치에서는 우리와 달리 의회가 주도적이며 행정에 대한 권한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지방의회의 독립과 존재감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지방의회 의원의 공천 및 선출과 의정비에 대해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각 정당의 지역위원장과 특별한 관계를 통해 지명되는 행태가 유지된다면 지방의회의 미래는 그리 밝지 못하다. 명목상은 정당 공천을 배제한다고 하지만 실질은 모두가 정당 공천으로 이뤄지는 것을 국민 모두 잘 알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공천을 받으려니 지역위원장과의 관계 형성에 최선을 다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정당 공천이 제도화된 단체장은 더 그렇다.

지방자치도 정치적인 제도이니 정치와 끊어질 수는 없지만, 지금의 공천 시스템으로는 젊고 새로운 인물, 혁신적이고 전문적인 인물이 들어갈 길이 아주 좁다. 능력과 자질보다는 관계를 통해 차지할 수 있는 자리의 하나가 됐다. 이런 부정적인 면이 커지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의원 의정비 현실화이다. 서구 유럽의 지방의회는 일종의 사회봉사로 분류된다. 사회봉사는 무보수를 전제로 한다. 전문가들이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자리가 지방의회 의원이라는 자리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방의회 의원의 보수를 현실화하면서 늘 그들의 보수가 사회문제가 됐고, 시민의 심사보다는 자기 스스로 결정하게 되면서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독립된 의회 건물, 의원 보수, 행정 지원 인력 등 지방의회의 운영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이 모두 세금이다. 세금이기 때문에 시민의 통제가 꼭 필요한데 구속력 있는 제도를 만들지 않고 있다. 여기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 말이 해외 연수다. 이 또한 꼭 필요하다면 다녀올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단체장이건 의회건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시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본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본인들이 충성을 다해야 할 대상은 소속 정당이 아니라 시민이다. 아직은 시민들의 감독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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