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소속, 신분, 계급 따위를 나타내거나 어떤 것을 기념하기 위해 옷이나 모자 등에 붙이는 물건을 배지라고 한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종류가 있지만 배지하면 흔히 ‘금배지’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국어사전에서도 나와 있듯이 금배지는 금으로 된 배지라는 의미 외에 국회의원 또는 그 자리라는 뜻도 담고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때론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까지 확장해 이 단어를 쓰기도 한다.

본디 권의주의를 비꼬는 의미여서 좋은 뉘앙스의 용법은 아니다. 한때 국회의원의 ‘국’을 한자인 ‘國’으로 새기면 의혹을 뜻하는 ‘或’이 떠오르고, 한글로 ‘국’을 새기면 거꾸로 볼 때 놀고먹는 걸 비유하는 ‘논’이 떠오른다고 해서 여러모로 난감해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한글로 ‘국회’라는 글자를 새겨 불필요한 시빗거리를 없앴다.

국회의원 금배지는 지름 1.6cm에 무게 6g이다. 금배지라는 단어와는 달리 성분은 99%가 은이라고 한다. 여기에 0.2g의 금을 도금한 것이다. 가격은 3만5천 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굳이 금배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처음 제작했을 때 순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금배지가 사실상 ‘도금배지’가 된 시점은 1981년이라고 한다. 과도한 특권의식이라는 세간의 지적을 수용한 결과다. 도금배지를 금배지로 착각한 양상군자들이 절도행각을 벌인 경우도 있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지금도 회자된다.

하지만 도금배지조차도 특권의 상징으로 여겨져 ‘국회의원에 당선된다’는 말을 여전히 ‘금배지 단다’고 에둘러 표현한다. 한때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가 의원 배지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유야무야된 상황이다. 물론 의원 개개인이 구입하는 것이어서 임기가 끝났거나 낙선했다고 반납하는 것은 아니다. 금배지를 반납했다는 말은 낙선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라면 모를까 대다수 기초·광역의원이나 국회의원들은 각종 행사장에 내빈으로 참석하면서 배지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낸다. 의전의 대상임을 은연중에 행사 주최자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분들에게 배지는 책임과 봉사라는 가늠할 수 없는 무게의 상징인지, 6g의 특권과 예우의 상징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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