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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한국 문학장(場)의 쇄신을 꿈꾸며

문계봉 시인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9월 21일 금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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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계봉 시인
며칠 전 인터넷신문인 ‘뉴스페이퍼’에 실린 한 기사(9월 12일자, ‘300만 원이면 등단할 수 있다고요? 문예창작과 입시생 혼란스럽게 하는 등단 장사 조심’)를 보고 무척이나 우울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수시 모집 원서 접수를 앞둔 9월 초, 문예창작과 입시생들이 모여 있는 익명 채팅방에 "300만 원이면 등단해서 쉽게 대학 갈 수 있다는데……."라는 이야기가 올라왔고 이후 입소문을 타고 이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고 한다.

학생들을 혹하게 만든 ‘300만 원 등단’이란 ‘등단장사’에 대한 이야기다. 등단장사란 운영이 어려운 출판사나 문예지들이 작가나 시인이 되고자 하는 아마추어 문인들을 등단시켜 주는 대가로 자사 출판 도서를 강매하거나 시집 발간비 명목으로 수백만 원의 돈을 요구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사실 이것은 문단 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이러한 유혹이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에 문학장의 선배로서 당혹감을 넘어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작가와 출판사 혹은 작가와 비평가 사이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짬짜미의 부작용은 그 연조가 매우 깊다. 20여 년 전에도 이미 그러한 부작용과 관련한 심각한 문제 제기가 아래와 같이 제출된 바 있었다.

"작가들은 광고를 많이 해주는 출판사를 좇았고, 비평가는 공정성보다는 자기가 속해 있는 출판사의 논리를 대변해주기에 급급했고, 출판사는 상을 내세워 작가들을 묶어두기에 바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참다운 문학의 길은 더욱 좁아 보였고 좋은 작품이 나오기 지극히 어려웠다."(「실천문학」1998년 봄호, 7쪽)

"자본이 작가의 창작에 깊숙이 침투하여 당근과 채찍을 거듭하게 되면서 작가의식은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이제 잘 쓰는 작가는 잘 팔리는 작가이기도 해야 했다. 작가의 현실 타협은 그의 창작의 현실 타협이기도 했다.(…) 비평의 많은 경우는 출판사의 상업 자본에 하청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 이른바 연예판의 스타시스템과 유사한 이벤트 마인드를 통하여 상업출판은 작가를 고용했으며, 그에게 자본의 욕망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절차의 분장을 담당하는 분장사로 비평이 활용되었다."(신철하 ‘출판자본과 작가’, 「실천문학」1998년 봄호, 85~87쪽)

이 얼마나 부끄러운 문단의 민낯이었던가. 그런데 더욱 슬픈 사실은 이러한 20년 전의 문제 제기가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가 양산되고 각종 문학상이 난립해 외적으로는 한국 문학장이 풍성한 확장을 이룬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적으로는 자본에 투항한 일부 욕망들이 문단을 잠식해 온 역사였던 것이다. 그 결과 문학장 안에도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확대되고, 문학비평은 문학 저널리즘 속에서나 겨우 양생하게 됐다. 이후 거품이 가득한 문학작품들이 양산됨으로써 우리 문학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물론 어느 시대나 해당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그것에 기반해 치열한 실천을 경주한 작가들은 존재해 왔다. 그러나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 그리고 작가조차도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해 자본 증식에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는 것은 그 사회의 문화적 깊이가 일천해졌다는 것이고, 시대를 초월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의 생산이 무척 요원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 문제를 계기로 불거진 문학권력 논쟁에서도 언급됐지만 이제 문학에서의 감동이란 더 이상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작가의 치열한 작업을 통해서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공룡이 돼 버린 출판 권력과 그에 부역하는 비평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됐다. 젊은 작가들은 빠른 출세와 독자와의 소통에 대한 강박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작가적 신념을 포기하거나 유예한 채 문단 권력의 안온한 우산 밑으로 자발적으로 찾아들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이러한 ‘부끄러움’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국 문학장은 단지 욕망의 집산지일 뿐이고 우리의 문학에는 희망이 없는 것이다. 한국 문학을 이끌어 갈 미래의 잠재적 작가들인 학생들조차 손쉬운 출세와 그릇된 욕망의 포로로 삼으려는 자본의 공세를 목도하면서 20여 전의 문제의식을 다시금 새삼스레 확인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여전히 시대를 밝히는 등불임과 동시에 당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전히 건강한 문제의식과 시대적 소명을 감당하려는 많은 작가들이 변방으로부터 중심권력의 부조리함을 타격하며 건강한 한국 문학장을 만들기 위한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장 쇄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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