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지를 수집해 모은 돈으로 불우 이웃을 돕는 김춘선 씨가 20일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 자택에서 폐지를 정리하고 있다.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 폐지를 수집해 모은 돈으로 불우 이웃을 돕는 김춘선 씨가 20일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 자택에서 폐지를 정리하고 있다.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올해도 어김없다. 아니 매일 매일 한결같다. 칠순이 넘어서도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줍고, 이를 팔아 모은 돈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한다. 25년째 선행을 실천하는 김춘선(76)할아버지의 얘기다.

20일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3동 자택에서 만난 김 할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웃을 돕는 일을 하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며 "앞으로도 계속 폐지를 줍고 기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지만 김 할아버지는 집 안 작은 마당에서 폐지와 폐가전제품을 정리했다. 오래돼 녹슬고 고장 난 가스레인지와 TV, 밥솥, 난로, 선풍기, 청소기 등이 마당을 가득 채웠다. 그의 옆에는 아내 원옥련(69)씨가 분주히 움직였다. 원 씨는 남편이 폐가전제품을 가져오면 분해해 놓는다. 통째로 고물상에 가져다주는 것보다 분해해야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 씨는 "집에 물건이 많이 쌓여 청소하기 힘들다"고 퉁명스럽게 내뱉으면서도 이내 "이웃을 돕는 좋은 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갈수록 커진다"고 환하게 웃었다. 남편의 기부활동에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묵묵히 다하고 있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다.

김 할아버지가 이웃 돕기 활동을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경험 때문이다. 해방 전인 1942년 동구 수도국산 달동네에서 태어나 말 못할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남의 집 살이를 하며 받은 구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고. 또 연탄장수, 엿장수 등의 직업을 전전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형편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30대부터 시작한 고물상 한쪽에 ‘하꼬방(상자 같은 작은 집)’을 지어 네 식구가 살았다. 부지를 임대해 고물상을 하다 보니 숱하게 이사를 다니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어렵게 살았지만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보면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

"자기도 먹고살기 힘든데 남을 도와준다고 하니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많이 당했지. 어떤 이는 ‘미친놈’이라고 욕하기도 했지. 하여튼 욕을 많이 얻어먹었어. 그래도 이 일을 멈출 수는 없었어."

할아버지의 선행은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그는 민족 대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지난 17일 주안3동과 주안7동 행정복지센터에 각각 쌀 30포(10㎏들이)씩 총 60포를 전달했다. 몇 해 전 고물상을 정리한 그는 1년에 두 번씩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생색내려고 하는 기부라면 힘들어서 지금까지 못했을 거야. 가정형편이 몹시 어려웠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실천한 것이 벌써 25년이나 됐어요.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해야지."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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