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3살 된 스위스 베른 태생의 이탈리아계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는 최근 한 사건을 통해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 사건이란 다름아닌 지난 5월 11일 저녁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열렸던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서의 대역 출연이었다.

원래 남자 주인공 카바라도시 역에는 슈퍼스타 루치아노 파바로티(66)가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그의 갑작스러운 독감으로 인해 대역이 필요했다.

공연 이틀 전날 밀라노에 머물고 있다가 뉴욕의 매니저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은 리치트라는 콩코드 여객기편으로 급거 뉴욕으로 날아갔고 30분 정도의 단 한 차례 리허설을 거친 뒤 무대에 올랐다.

이탈리아에서 갑자기 날아온 이 젊은 테너의 뛰어난 가창력과 호소력 강한 연기는 단번에 뉴욕의 청중과 평론가들을 사로잡았고 AP통신과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제2의 파바로티가 나타났다'고 대서특필했다.

전세계 정보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 주요 매체의 막강한 영향력에 힘입어 그 전까지 그저 '전도유망한 테너 가수' 정도로 취급되던 리치트라의 위상은 하루 아침에 달라졌으며 일약 21세기 오페라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생짜 신인은 아니다. 이미 1998년 이탈리아 파르마 극장에서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출연으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이래 스칼라극장 등지에서 주역가수로 활약하는 등 유럽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가수였다.

메트 무대에도 당초 2004-2005 시즌 데뷔가 예정돼 있었으나 파바로티의 건강악화로 그 일정이 앞당겨진 것 뿐이었다.
그러나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세계 최고의 무대로 군림하고 있는 메트에서의 성공적인 데뷔는 그가 이전에 받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스포트라이트를 리치트라에게 쏟아지게 만들었다.

탁월한 상업적 감각을 가진 메이저 음반사들이 이런 호재를 놓칠 리 없다. 최근 소니 클래식스에서 출시된 리치트라의 첫 독집앨범 '더 데뷔(The Debut)'는 이렇게해서 나온 음반이다.

리치트라의 장기로 꼽히는 푸치니와 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들이 실렸으며 첫곡으로 '신데렐라 데뷔'의 계기가 된 '토스카'에 나오는 카바라도시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카를로 리치 지휘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았다.

'별들은 반짝이고 대지는 향기로운데...(E lucevan le stelle e olezzava la terra...'로 시작하는 첫머리의 16분음표와 8분음표의 F#음과 B음이 나지막하게 되풀이되는 악구(樂句)를 듣는 순간 리치트라라는 테너의 형상이 그려진다.

바이브레이션의 진폭이 크고 참신한 기백이 느껴지는 서정적인 목소리지만 어딘지 모르게 좀 어설픈 구석도 있다. 아직 애송이티를 벗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음반에는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이루고', '서부의 아가씨' 중 '나는 자유의 몸이 됐다고', '토스카' 중 '오묘한 조화', '마농 레스코' 중 '나는 이런 여인을 보지 못했네', '나비부인' 중 '안녕, 사랑의 보금자리여', '아이다' 중 '청아한 아이다', '운명의 힘' 중 '삶은 불행 뿐인 지옥', '시몬 보카네그라' 중 '내 영혼에는 질투의 화염이', '가면무도회' 중 '뱃노래', '맥베스' 중 '아! 네 아버지의 손', '일 트로바토레' 중 '아! 내가 당신의 것이었을 때' '불꽃은 타오르고' 등 대표적인 테너 아리아들이 수록됐다.

리치트라의 음색은 리리코 스핀토 계열로 베르디와 푸치니를 부르기에 적합한 소리이긴 하나 성량이 다소 부족하고 아직 연륜이 짧은 탓에 극적인 정서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문제가 엿보인다.

드라마틱한 감정표현이 요구되는 '별은 빛나건만'이나 '불꽃은 타오르고' 등의 아리아를 마리오 델 모나코나 유시 비욜링 등의 노래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리치트라의 미숙함이 드러난다.

하지만 대부분의 명가수들이 극장 경력 8-10년은 보낸 후에야 진짜 실력을 발휘한 과거의 예를 보면 앞으로 3-4년 쯤 뒤에야 그의 진정한 전성기가 열릴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라 스칼라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리치트라의 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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