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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박노훈 경기본사 경제문화부장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9월 27일 목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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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훈 경기본사 경제문화부장
처음부터 의도하진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고정됐다. 두 글자의 제목. 그래서 어떤 때에는 내용보다는 제목을 선택, 아니 창작하는 게 더 힘들었다. 형식을 먼저 정하고 의미를 가져오려니 힘들 수밖에. 그래서 한 번 생각해 본 적 있다. ‘두 글자 제목의 끝은 아마도 이 단어가 되지 않을까. 이후에는 형식보다는 의미에 치중하리라’하고. 왜냐하면 끝이 될 지도 모르는 이 두 글자 제목의 단어는 이십대 이후 인생의 아이러니(irony)를 이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해를 넘어 현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 정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컸다.

 이십대 초반으로 기억된다. 군복무 시절, 점점 고참으로 올라가고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읽기 위해 고른 책이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참 읽기 힘들었다. 나름 ‘어려운 책’(?)을 잘 읽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은 현재까지 읽었던 모든 책을 포함해 가장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 시절, 그 시절 개인적인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는 「노동은 해방구다」부터 대학교 시절, 전공자들마저 어렵다는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등도 소화했지만 그 책만큼은 무슨 의도인 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셋 중 하나가 아닐까 사료된다. 첫째는 자만이다. 원래 이해력이 떨어졌거나 수준이 고만고만했는데, 잘 읽는 편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둘째는 정말 그 책이, 정확히 말하면 그 소설의 철학적 방대함 혹은 깊이가 심오했던 것이다. 세번째는 번역의 문제다. 외국 사람이 쓴 글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표기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셋 중 하나가 아니라 이 모두, 이 중 두 개 이상이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어쨌든 그 책은 나에게 하나를 남겼다. 그게 바로 키치(kitsch)다. 키치에 대한 정의는, 특히나 여기서 말하는 키치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다. 당시 책을 덮고 나서 찾아보긴 했지만 좀 다른 것으로 기억된다. 또 그게 사전적 의미이든 아니든 당장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머릿속에 저장돼 있는 그대로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소위 저급(低級)하다고 여기는 것에서 희열을 느낀다. 대변을 더럽다고 생각하지만 대변을 보면서 쾌감을 얻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런 속성을 지녔다."

 그전까지 생각하지 못한 사고였다. 그런데 맞는 말 아닌가. 물론 키치가 인간의 본능을 귀결하거나 대변할 수는 없어도 그런 속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요즘 문화가 그렇다. TV 속 화면이 선정적이지만 손으로 가리더라도 눈은 보고 있다. 때로는 그걸 예술이라고 포장한다. 예술에 대한 포장 논란은 차치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겠다. 이전에도 한 번 들었던 예로 기억하지만 복기하자면, 1970년대 생을 전후로 구전가요 아닌 구전가요 하나를 기억할 것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개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이를 차용해 수년 전 가요가 나왔다. 가수 현아의 ‘빨개요’란 곡으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개면 현아, 현아는…’이다. 뒤에 현아는 이후 가사 없이 멜로디로 처리된다. 키치가 아니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심의에 걸린 곡도 아니니까. 심지어 히트곡이다.

 경기도가 최근 산하 단체장들을 속속 뽑고 있다. 임기가 다 된 공석을 메우기 위해 또는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신임 단체장들의 소식이 들린다. 그런데 문제는 과정이다. 이 전과는 다른, 좀 더 건전한 모양새를 기대했다. 무언가가 바뀌었으니까. 그런데 수년 전 현아의 히트곡이 또 나오는 재탕이 다반사다. 키치를 인간의 본능으로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할지, 본능이지만 지양해야 할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건 키치가 만약 현실에 도배된다면 우울함이 따라 올 것 같다. 더욱이 일부가 아닌 전부가 된다면… 희망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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