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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학생 시절에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오만과 편견」이란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오만과 편견을 지닌 남녀 주인공의 결혼하기까지의 과정과 심리적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성인이 되어 소설 대신 동명 영화를 통해 「오만과 편견」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오만과 편견」이란 작품이 제인 오스틴의 1813년 작품인데 200년도 더 넘은 작품의 줄거리와 심리적 묘사, 그리고 벌어지는 갈등들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만과 편견’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다시 확인해 보니 오만이라 함은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을 의미하고,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계절이다. 아직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이른데도 야산 오르막길가에는 어찌된 일인지 이미 많은 코스모스가 활짝 얼굴을 드러내고 가을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이 하 수상하니 가을의 상징이라고 여겼던 코스모스조차 정신줄을 놓아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나의 오만한 생각과 속 좁은 편견에서 나온 생각일 것이다. 코스모스 좀 피었다고 해서 완연한 가을이 온 것도 아닌데 괜한 걱정이다.

 추석 전 재래시장에서 만난 한 과일 상인은 "이것저것 잘 되는 것은 별로 없고 사는 일이 퍽 힘이 든다" 고 말한다. 부부가 생활 전선에 나서다 보니 하나밖에 안 되는 아이 건사도 제대로 못해 속이 상한다는 말도 곁들였다.

 어깨가 축 늘어진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가 파는 과일을 두 말 없이 사주는 일밖에 없었다. 오만함도 편견도 없는 나의 순수한 생각이었다.

 얼마 전 지인들과 12인승 승합차로 남해와 지리산을 다녀 온 일이 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고속도로가 상상 외로 막혀서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데 평소보다 2시간은 더 걸렸을 것이다. 용변도 볼 겸 잠깐 쉬어볼 요량으로 들른 휴게소마다 장사진이다. ‘요즈음 살기가 팍팍하다고 하던데 먹고 살기 힘들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나?’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연휴만 되면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매년 그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는 것을 보면 내 생각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도 나의 오만함이나 잘못된 편견일지도 모른다.

 장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 임명을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한참 이어지고 있어서 그 방송을 본 일이 있다.

 인사청문회가 도입되고 나서 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자의 무덤이 됐다고도 한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병역 문제 등이 발목을 잡았는데 지금까지 낙마한 사람들을 보면 업무 수행 능력과 비전 제시 측면보다는 하나같이 도덕성이 문제였다.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은 대개 자기 얘기를 주로 한다. 그리고 후보자에게는 "예, 아니오. 짧게 대답하세요"라고 하거나 "어떻게 생각하세요, 후보자?" 하면 후보자는 "네, 의원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적극 반영하겠습니다"라고 답하면 대개가 끝이다. 그 짧은 시간에 의원들은 후보자들을 제대로 검증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후보자는 그 자리만 벗어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구렁이 담 넘듯 답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원들이나 후보자 모두 국민들에게 오만과 편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생각이 나의 오만함이나 잘못된 편견이라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갈등과 불편한 관계들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좋은 관계였던 사람도 같이 생활하다 보면 처음과 달리 조금씩 불편한 관계로 발전하는 일이 많다. 그럴 경우 대개는 상대방보다는 내 생각이 기준이 된다. 나의 생각이 다른 사람보다 더 공정하지 못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생각을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SNS에 올라오는 댓글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속의 글이거니와 나 또한 지극히 공감한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가까이할 수 없게 만든다"로 바꿔 보니 더 쉽게 다가온다. 오만은 마음의 귀를 멀게 하고, 편견은 마음의 눈을 멀게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오만과 편견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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