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상사 A씨: "너희 집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들렀는데 시간 되면 커피나 한잔할까?"

 여자부하 B씨: "(어떡하지? 시간 안 된다고 하면 찍힐 텐데…) 세수만 하고 나갈게요."

 울산경찰청이 퇴근 이후 이성 부하직원에게 사적인 연락을 금지하는 규정을 도입했다는 소식이다. 이름하여 ‘퇴근 후 이성 하급자에 대한 사적 연락 금지법’을 지난 1일부터 시행했다.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담기 위해 ‘법’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였지만 일종의 직장 문화 개선 운동 성격이 짙다.

 해당 규정은 상사가 퇴근 후 이성 부하 직원에게 전화, 문자메시지, 메신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활용해 업무와 상관없는 사적인 일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퇴근 후 안부를 묻거나 만취해 연락하는 행위, 온라인 정보 등을 일방적으로 반복해서 보내는 행위 등 하급자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행위를 금지했다. 맛집에 가자거나 주말인데 뭐하냐고 묻는 것도 금지 대상이다.

 해당 규정은 남성 중심 문화에서 고통받는 여성 경찰들을 배려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게 울산청의 설명이다. 물론 울산청은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규정인 만큼 이를 어긴다고 처벌하지는 않을 방침이지만 자칫 여경의 소외를 더욱 가속화하고 사회에 만연한 성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일종의 ‘펜스 룰’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펜스 룰(Pence Rule)이란 남성이 가족 이외의 여성과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펜스 룰은 미국의 부통령 마이크 펜스(Mike Pence)가 2002년 의회 전문지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절대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철학을 소개한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데, 직장과 같은 공적 영역에서 펜스 룰을 적용하면 남성 고위직이 대다수인 조직 특성상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업무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배제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여성을 차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거세다.

 한때 농민들이 시위를 하면서 죽창을 들었다고 해서 전국의 모든 대나무를 없애자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는 이가 있었다.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자동차를 없애자는 발상과 다르지 않다. 없애고 막는 게 능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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