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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 인천지부 부회장
산자락에 낮게 깔린 안개가 조금씩 피어오르며 퍼진다. 눈앞에 늘어선 무덤들이 안개의 옷자락을 들치며 언뜻언뜻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10월의 시작 날 아침이다. 챙길 것 많은 아침의 분주함을 밀쳐 두고 아버님 산소로 달려왔다.

 용인에 있는 공원묘지에 누워 아버님은 무슨 생각에 잠겨 계실까? 갑자기 저 혼자 찾아 뵈어 놀라셨죠? 얘가 추석 연휴에 오고 또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나 하실 테지요. 생각이 많아서 왔어요. 이제 남은 달력은 달랑 두 장뿐인데 이 해가 가기 전에 불편한 제 마음을 털고 정리를 하고 싶어서요. 아버님은 돌아가신 그쪽에서 이쪽 세상을 보고 계신가요? 이쪽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시는지, 아니면 훗날 일까지 내다보시고 초연하게 계시는지 궁금해요. 아버님, 사람이 죽으면 왜 돌아간다고 하나요? 이곳이 안주하며 발 뻗고 살 곳이 아니라 스치듯 지나가는 나그네의 짧은 여정 같은 곳이라면 돌아가야 될 그쪽은 어떤 곳일까요? 땅 속에 묻히면 서서히 녹아 없어지는 육신이 아닌 정신은 정말 어디로 가나요? 분간 없는 짙은 안갯속을 걷고 있는 듯, 명쾌한 답이 보이지 않네요.

 아버님, 이제는 적적하지 않으시죠? 돌아가신 그곳에서 두 아들과 상봉을 하셨을 테니까요. 온통 희망을 얘기하는 말들로 도배를 한 한 해의 시작. 새 희망을 위해 터뜨린 샴페인 거품이 사그라지지도 않은 1월에 둘째 아들을, 코끝에 느껴지는 찬 냉기가 몸을 움츠리게 하는 겨울의 초입에, 또다시 큰아들과 재회를 하셨네요. 저희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의 연속이었어요. 바람이 저편 산등성이를 타고 불어오고 있어요. 바람결에 안개가 걷히는가 싶더니 다시 조금씩 엷게 깔리고 있네요. 아버님 산소 주변에 늘어선 나무들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물들고 있네요. 바람이 한 차례 일렁이면 물들인 잎들을 쏟아내고 있어요. 잎들은 수직으로 뚝 떨어져 내리지 않고 한두 바퀴 군무를 추면서 흘러내리고 있어요. 딱 자르기엔 이승의 삶에 미련이 남아서일까요? 바람이 멎자 군무도 멈췄네요. 사람도 나뭇잎도 마지막 가는 모습이 아름다워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은 아주버님은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큰 아주버님은 짧은 작별 시간만 주고 돌아가셨어요. 두 분의 죽음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어요. 마음이 한없이 복잡해지더군요. 준비된 죽음이든 갑자기 찾아든 죽음이든 누구나 돌아가야 될 그곳을 가기 전에, 남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을 남기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아버님을 뵈러 오면서 가변 차선이 있는 길을 지나왔어요. 어느 쪽 길을 가든지 목적지는 모두 한곳이겠지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안주할 마지막 정착지를 향해 비포장도로로, 포장도로로, 때로는 상황에 따라 가변차선을 만들기도 하면서 지금도 가고 있어요. 목적지는 하나인데 가는 길은 왜 이리도 복잡하고 많은지요. 시간이 많이 지났나 봐요.

 저기 앞쪽으로 오롯오롯 누워 있는 무덤이 한눈에 들어오네요. 지독하게 깔렸던 안개가 다 걷혔어요. 부드러운 햇살을 타고 하늘로 맑은 물방울이 되어 올라갔어요. 환하게 비추는 햇살을 보니 제 마음도 가벼워졌어요. 저도 이제 저를 힘들게 했던 속 쓰린 앙금들을 안개에 실어 하늘로 날려 버리겠습니다.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저 단풍잎처럼, 개운하지 못했던 제 마음속 엉클어진 실타래를 지혜롭게 잘 풀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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