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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90회를 맞은 아카데미 역사상 그랜드 슬램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 및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석권한 작품은 단 세 편에 지나지 않는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양들의 침묵’ 그리고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이 그 영예의 작품들이다. 1934년 개봉한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은 로맨스와 코미디가 결합된 장르물이다. 개성과 욕망이 다른 남녀 충돌을 그린 이 작품은 정곡을 찌르는 위트 있는 표현과 빠른 상황 전개를 통해 유쾌함을 전하는 고전 스크루볼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 준다.

응석받이로 자라온 부잣집 외동딸 엘리는 킹 웨슬리와 사랑에 빠진다. 일사천리로 혼인신고까지 마친 그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지만 뜻밖에도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킹 웨슬리는 평판이 좋지 못한 남성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재산을 노린 사기꾼이라고 웨슬리를 매도하며 결혼 취소를 준비 중에 있었다. 이에 격분한 엘리는 웨슬리를 만나러 뉴욕으로 향한다. 반면 근무 중에 술을 마셔 해고된 기자 피터도 뉴욕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앞으로 피터와 엘리에게 펼쳐질 미래는 어느 평범한 밤에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일에서 비롯된다.

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은 부잣집 외동딸이 연인을 만나러 가던 중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로, 삶의 방식과 생각에 접점이 거의 없어 보이는 앙숙커플 간의 다툼과 화해, 연애와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사회적·계급적 간극을 조화롭게 결합해 당시 불안했던 미국사회를 이상적으로 봉합하는 도피처의 기능을 수행하며 평단과 관객의 큰 사랑을 받았다. 대공황으로 웃음과 희망을 잃은 미국인들에게 이 작품은 소시민적 선의와 따뜻한 인간미의 가치를 강조하며 새로운 희망을 전했다.

이후에도 미국적 휴머니즘을 보여 준 프랑크 카프라 감독은 1930년대에 아카데미 감독상을 3번이나 수상할 만큼 가장 미국적인 정서를 잘 구현하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 유행을 선도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인 클라크 게이블이 잠옷을 갈아입는 과정에서 셔츠 속에 내의를 입지 않아 러닝셔츠의 매출이 전년 대비 50% 이하로 급감하는가 하면, 여성이 히치하이킹을 위해 각선미를 보여 주는 장면이나 도넛을 커피에 살짝 담가 먹는(dunk in) 방식 등은 이 작품이 원조라 하겠다.

영화 ‘졸업’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도망치는 장면은 이 영화를 참고했으며, 유럽의 공주가 로마에서 우연히 신문기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인 ‘로마의 휴일’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기초를 다진 작품 또한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인 만큼 프랑크 카프라의 영화는 대중이 사랑하는 다양한 가치가 총망라된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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