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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겸 시인
청풍양수(淸風兩袖) 라는 고사가 있다 ‘두 소매 속에는 맑은 바람만 있다’는 뜻으로 청렴한 관리를 일컫는 말이다. 이 말의 유래는 중국 명(明)나라 우겸이라는 관료를 미화시킨 고사로 당시 그가 얼마나 청렴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겸은 명 황제 재위 시 중요한 직책을 보임 받은 고위관료였다. 당시 지방의 관리가 수도로 올라가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서는 그 지방의 특산물은 물론, 재물을 중앙의 관리에게 상납하는 것이 관례화 돼 있었다. 그러나 우겸은 매번 황제를 알현할 때마다 빈손으로 올라갔다. 이에 일부 측근들이 "금은보화 같은 재물은 아니더라도 우리 지역의 특산물을 진상하는 것이 신하 된 도리입니다"라며 챙겨줬으나 우겸은 "두 소매에 맑은 바람만 넣고 천자를 알현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이며 백성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과거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의복은 소매가 넓어 남몰래 뇌물을 받는 주머니 역할을 하고 있었으므로 넓은 소매에 맑은 바람을 넣고 다니는 것은 그 관리의 행실이 그만큼 청렴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고사를 볼 때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은 공무원 하면 적어도 우겸과 같이 겸양지덕을 갖춘 맑고 투명한 관리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바라보는 공무원의 모습은 그리 곱지 않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오랜 세월 동안 공무원에 대한 불신은 팽배돼 있고 심지어는 증오까지 느낀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어쩌면 관습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공무원에 대한 피해의식과 부정적 편견에서 나온 것 같다. 그 원인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역사적 환경과 정치적 상황,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간의 갈등이 주요인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조선 중기 부패의 상징인 탐관오리의 등장과 그들로 인한 전결, 환곡, 군역 등 삼정의 문란, 순종 이후 족벌정치로 인한 매관매직, 그리고 일제 강점기 제 나라를 지키지 못한 지도자급 부패 관료들에 대한 원망, 친일 관료들의 강제 노역과 수탈행위, 한국전쟁으로 인한 혼란기의 무능한 관료들에 대한 적개심, 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의 공권력 남용, 80~90년대, 200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온 이념적 갈등 등 모든 것이 공무원과 연계된 행위로서 국민의 마음을 이반한 행정 행위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광복 이후, 60년대와 70년대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맨몸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주역들이다. 이 나라가 이만큼 세계 경제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공무원들의 희생과 애국심이 있었기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경제적 불안 요인으로 젊은 계층들이 공무원을 선호하고 있지만 70년대 우리나라 엘리트 계층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안중에도 없었다. 수지분석으로 따지자면 일반 대기업의 보수가 공무원보다 2배, 심지어 3배 이상 차이가 난 시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좀 안정된 기미가 보이자 철밥통이니 부패의 온상이니 하며 평가절하하는 그들을 보면 당시 열악한 근무 환경과 적은 봉급으로 겨우겨우 고단한 삶을 연명하며 성실하게 살아 온 공무원들에게는 다소 억울한 면이 있다.

 순금의 정의는 순도 99.9%를 말한다. 한마디로 100%의 순도를 나타내는 순금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무원 수는 정부 발표 기준으로 약 100여만 명 정도 된다. 만약에 이중 0.1% 공무원이 불의의 사고를 친다면 그 숫자는 1천 명이나 된다. 이 숫자가 언론에 노출돼 모든 공무원들의 잘못된 소행인 양 대서특필된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도 이 나라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지고 국가 신임도 또한 곤두박질할 것이다. 순도 99.9%의 순금 속에 들어 있는 0.1%의 불순물을 가지고 순금덩이 전체를 불순한 금으로 매도한다면 묵묵히 음지에서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나름대로 중심을 세워 국민들이 만들어 놓은 법규와 제도 안에서 모든 공무를 객관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믿음으로 그들을 응원하는 것도 어쩌면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자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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