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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순휘 정치학박사
판문점 선언(4월 27일)에 이어 싱가포르 선언(6월 12일) 그리고 평양 선언(9월 19일)에 이르는 숨가뿐 한반도의 정상회담 열차가 달리고 있다. 다음 선언은 워싱턴 선언이거나 서울 선언으로 달리고 있는게 작금의 한반도 정세이다. 이러한 선언정치에 브레이크를 거는 움직임이 있다. 그것은 지난달 27일 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중장)이 ‘9·19 평양 공동선언’에 대해 국민공청회를 열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제안한 것이다.

 청와대의 공식적인 답변을 얻으려면 20만 명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8일까지 국민청원이 2만 여명을 돌파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신 장군은 청원글에서 "7·4 남북공동성명(1972년)이후 올 4·27 판문점 선언 전까지 남북한 간에 크고 작은 회담이 무려 655회가 있었고, 그 중 245회는 서명까지 했지만 북한은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고 과거 남북 간 회담사를 분석했다. 그리고 "이번엔 북한이 달라졌다는 기대를 전제로 과거를 묻지 말고 ‘무조건적 믿어’라는 식의 이번 (평양공동선언)합의는 대한민국 국방을 무력화한 치명적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9월 19일 남북정상회담의 3대 의제는 ‘비핵화 진전’과 ‘남북관계 개선’, ‘군사적 긴장 완화 및 전쟁위험 종식’이었다. 비핵화 진전이 하루하루가 초긴장의 연속인데 남북한 군사적 긴장 완화 및 전쟁위험 종식을 위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혼재해 서둘 이유가 없는데 무리할 정도로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남북한 국방 책임자가 서명함으로써 군사적 변화와 더불어 국가 안보의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합의서에 따르면 남북은 육해공역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중지하기로 했고, 평화적 방법으로 협의 해결하며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상대방의 관할 구역을 침입 또는 공격하거나 점령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로 했다. 특히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해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증강 문제, 다양한 형태의 봉쇄차단 및 항행 방해문제, 상대방에 대한 정찰 행위 중지문제 등을 협의한다고도 명시해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한국군의 눈과 손발이 통제당하는 꼴이 됐다고 할 것이다.

 11월 1일부터는 MDL 일대에서 육해공군 차원의 각종 군사연습도 중지하기로 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무모한 합의를 해준 군당국자에 대해 과연 제정신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육군은 MDL로부터 5㎞ 내에서는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 기동훈련이 전면 중지돼서 정예육군이 오합지졸이 될 수도 있다. 해상에서는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 수역, 동해 남측 속초 이북부터 북측 통천 이남 수역에서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하고, 해안포를 폐쇄하기로 했다. 특히 ‘해상 적대행위 중단구역’을 남북 공동 40㎞가 아닌 남측으로 35㎞ 더 양보한 결과로 나타나서 과연 NLL을 스스로 무효화한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공중에서도 고정익항공기가 MDL로부터 동부전선 40㎞, 서부전선 20㎞를 적용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 항공 자산의 적지종심정찰이 불가한 상태가 돼서 아군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의 내용은 한마디로 남북 군사력의 ‘불균형의 불균형(Unbalance of Unbalance)’을 고착화해 적군의 호의에 따라 승패가 쥐락펴락하는 꼴이 됐다는 것이 신원식 장군의 분석이다. 국가안보는 정권 차원의 업무가 아니다. 5천만 국민의 생사가 달린 중차대한 국사(國事)이다. 지난 4·27 판문점 선언에 이어서 5개월도 안 돼서 군사분야에 치명적인 기획안이 수립될 수 있었는가도 의문이다. 이번에 신장군의 ‘9·19 평양선언’에 대한 국민공청회 제안은 반드시 개최해 볼 가치가 있다. 중국 고사성어에 송양지인(宋讓之仁)이 있는데 송나라 양공이 전쟁터에서 적군의 사정을 봐주다가 패망했다는 실화다. 지금 이 나라의 안보가 북한 사정 봐주다가 나라가 위태롭게 만드는 새로운 고사성어 ‘한문지인(韓文之仁)’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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