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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이 중요하다고 외치면서 교육 정책과 교실 상황은 왜 거꾸로 가는 것이지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탠퍼드의 폴 김 교수가 우리 교육에 던진 일갈이다.

 정답 고르기를 훈련하는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해결해 가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절실한데 우리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더구나 문제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 고치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주 취임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고교 무상교육을 비롯해 교육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우리 교육은 개인의 선택과 성장을 지원해야 하며 미래 교육의 방향은 사람"이라면서 "교육 정책은 국민 눈높이와 현장의 수용 정도, 준비 상태를 고려하겠다"고 했다.

 현 정부 들어 최악 평가를 받은 정책 분야 중 하나가 교육이었다는 점에서 혼란과 불신을 잠재우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긴 하겠으나 학창시절 몇 년 바짝 공부한 밑천으로 평생이 보장되던 때는 이미 지나갔으며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본들 정년 이후 몇 십 년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 가까운 미래조차 도무지 알 수 없을 만큼 급변하는 상황에서 답답함이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는 게 나만일까?

 창의적인 물음을 던지며 남과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우리 교육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할지, 또한 배움이 우리 자신에게 무슨 의미인지 되묻는 일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현실과 괴리된 채 표류하는 또 하나의 공허한 약속만 하는 것은 아닌지….

 주먹구구의 한국 정치에, 지지율에 기여하지 않는 부문은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는 판에서 교육 행정만 온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학교도 정부도 대안을 내지 못 하는 가운데 부모들은 자녀가 시험 잘 보기만 바랄 뿐인 걸 어쩌랴.

 요즘 중국에서 ‘치파 숙제’라는 것이 여론의 뭇매를 자초하고 있어 화제다. ‘치파’란 이상한 사람이나 기이한 사건을 뜻하는 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내주는 숙제가 너무 황당해 이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숙제가 뭔가? 아이들의 호기심, 탐구심과 함께 학습 의욕을 고취시키는 게 본래의 목적이고 무엇보다 학생 스스로 이를 해냈을 때 교육적 효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광둥성에 불산이란 곳이 있다. 중국 근대화 시기에 널리 알려진 곳이고, 배움의 열기도 뜨겁다고 하는 지역인데 얼마 전 한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에게 문제의 ‘치파 숙제’가 주어졌다. 그 내용은 "1억 개의 쌀알을 센 후 다음 날 학교에 가져오라"는 것. 1억 개의 숫자에 놀란 학부모가 ‘그걸 어떻게 세느냐?’고 묻자 교사는 ‘한 알씩 세면 된다’고 대답했다.

 쌀알 1억 개. 1초에 다섯 알씩 센다고 가정하면 1시간에 1만8천 알을 센다. 1억 개를 세려면 불철주야로 해도 8개월 이상 걸린다. 그리고 쌀알 1천 개면 대략 100그램 남짓, 1억 개면 몇 t이 될지 생각조차 안 해본 교사가 단순히 1억이란 숫자의 개념을 알게 하기 위한다는 이유로 숙제를 내고 다음 날 학교로 가져오라니….

 유 부총리는 장차 각계 전문가와 학생·학부모·교사 등으로 구성된 ‘미래교육위원회’를 만들고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국가교육위원회’는 내년에 출범시키며 초·중등교육 권한은 교육청과 학교로 이양하고 교육부는 고등·평생·직업교육 중심으로 개편한다고도 했다.

 중국의 예를 들어 적합하지 않다고 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중국 교육 당국의 관련 규정에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없어 학부모들이 대신해야 하는 숙제를 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현실은 ‘치파 숙제’가 올해 들어 질적으로 양적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학부모들로부터 "어려운 건 둘째 치고 이 숙제가 어떤 교육 효과가 있느냐?", "정부 캠페인을 홍보하기 위해 일부러 아이들이 하기 어려운 숙제를 내서 학부모들을 동원하려는 게 아니냐?"는 항의가 도처에서 빗발 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교육도 바뀌어야 하는가. 물론 답답함의 사슬을 끊기 위한 교육 개혁은 잠시도 지체할 수 없겠으나 개혁의 필요성을 웅변하는 일은 제치고 방치하면서 교육부가 자기 생존을 위해 필요한 ‘치파 정책’을 내놓고 있지는 않은지.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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