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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행복을 어디에 숨겨 두었을까?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10월 12일 금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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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원래 인간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악마는 행복을 이곳저곳에 숨겨 두었습니다. 그러나 똑똑한 인간들은 악마가 숨겨둔 곳을 용케도 찾아내어 다시 행복한 삶을 영위했습니다. 자존심 상한 악마는 인간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 두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결국 악마가 찾아낸 곳은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 두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통해 바깥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아야만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행복은 ‘즐거운 감정’입니다. 누구나 행복을 가까이 하고 싶고 불행은 멀리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행복과 불행이 따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늘 동행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행으로 다가서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것’이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회사에서 봉급이 20만 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들립니다. 모두들 행복해 합니다. 20만 원이라는 ‘어떤 것’이 행복감을 주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다른 부서 사람들은 50만 원이 올랐다고 합니다. 그때부터는 20만 원이라는 ‘어떤 것’은 불행의 씨앗이 돼 버립니다. ‘20만 원’이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됐던 겁니다. 그래서 노자도 "화에는 복이 붙어 있고, 복에도 화가 붙어 있다"라고 말했나 봅니다. 화가 복이고 복이 화라는 말입니다. 화를 복으로 여기는 사람은 늘 성장할 것이고, 복에도 화가 붙어있다는 것을 알고 늘 겸손하게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겁니다.

 즉, 행복과 불행은 ‘생각’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어떤 것’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책에서 죽음을 앞둔 중학교 소년과 대학생 봉사자와의 감동적인 사연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미국 병원의 중환자실에 심한 화상으로 생사기로에 놓인 소년이 있었습니다. 마침 자원봉사자로 그 병원에 온 대학생이 그 소년에게 배정되었습니다. 대학생은 소년이 얼마나 중환자인지 모르고 온몸이 붕대로 감긴 소년을 안타깝게 바라보았습니다. 몇 달 후면 퇴원을 할 것이라고 여긴 대학생은 소년이 퇴원했을 때 학교에서 배울 영어문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그런 심정을 모르던 대학생은 심하게 꾸중을 했습니다. "이 녀석아. 네가 퇴원해서 학교에 가면 그때 이것을 배우고 있을 거야. 네가 병원에 있는 동안 친구들은 공부하고 있는데, 네가 지금 배워두지 않으면 그때 도저히 따라가지 못해. 어서 이것 외워!"

 대학생의 이런 잔소리와 꾸중을 매일 듣다보니까 소년은 마지못해 외우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의사들도 부모도 포기했던 소년의 병세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회복되기 시작한 겁니다. 드디어 붕대를 풀었습니다. 살아난 겁니다. 주치의가 궁금해서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나는 네가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단다. 이건 기적이야." 소년이 말했습니다. "제가 죽는다고요? 저 형이 매일 와서 제가 공부하지 않으면 다음 학기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면서 꾸중을 하곤 했어요. 그래서 저는 의사선생님이 저 형에게 제가 살아날 거라고 말하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저는 살아날 것이라고 여기고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그랬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아니, 믿었던 겁니다. 그리고 소년의 몸은 소년의 생각대로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각이 주는 위대한 기적입니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은 바로 ‘생각’입니다.

 악마가 우리들의 마음속 깊이 감춰둔 행복을 찾느냐 못 찾느냐의 여부가 우리의 ‘생각’에 달려 있다는 것, 심한 화상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화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불행조차도 행복으로 바꾸어줄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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