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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웅본색

신효성 국제펜클럽 인천지부 부회장/소설가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10월 16일 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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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 인천지부 부회장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고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재산 전부라 할 수 있는 56억 홍콩달러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한 말이다. 56억 홍콩달러면 우리 돈으로 8천96억 원이라 한다. 천문학적 재산이라 어느 정도의 부를 가졌는지 소시민의 정서로는 감이 오지 않는 액수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가진 재산이 많을수록 명예도 권력도 누릴 수 있기에 부자가 되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그는 재산뿐만이 아니라 하는 일에도 대중의 인지도에서도 성공을 한 인생이다. 그런 그가 "내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고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홍콩 누아르 영화의 정점을 만들었던 주윤발이다.

 그가 출연한 영화 ‘영웅본색’은 시대의 젊은이들 가슴에 단단히 박혀 한 시대를 풍미한 대배우로 엄청난 영향을 줬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에 걸쳐서 주윤발이 출연한 영화는 명작이 됐고 홍콩을 아시아의 영화 메카로 부상하게 만든 주역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1인이 됐다. 노키아 휴대전화를 17년간 사용했다거나 할인매장에서만 옷을 산다거나 한 달 생활비가 기껏 800 홍콩달러라고 해서 한화로 11만 원을 조금 상회하는 생활비 내역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옷을 입지 않는다. 편안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유행 지난 할인매장의 옷을 구입하는 이유를 설명한 그의 대답은 어록이 돼 세상을 따뜻하게 했다. 호화 저택에 고급차에 의상이며 구두 시계 핸드백까지 명품으로 휘감은 연예인들 모습에 익숙한 대중들은 주윤발의 검소함에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일전에 우리 아이가 이사를 한 적이 있다. 1인 세입자의 욕구에 맞게 붙박이 시설이 돼 있던 곳이라 이삿짐이 단출했다. 용달차에 짐을 싣고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서 새 집으로 이동하는 중에 기사님의 진솔한 용달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연세 지긋한 기사님은 현직에서 은퇴해 가끔 용돈벌이로 일을 한다며 짐을 실어 나른 세월을 들려 줬다. 강변 어디에 사는 인기 연예인의 집에 있던 고급 가구 몇 개를 충청도 소읍에 사는 처갓집으로 이송 의뢰 받아서 방문했다 한다. 갔더니 유명 가구업체에서 나온 고위 임원의 진두지휘로 집안의 가구를 교체 중이었다 한다. 늙수그레한 용달차 기사의 눈에는 엄청나게 넓은 집에 고급진 가구들이 즐비했는데 아직도 말짱한 가구들을 들어내고 새 가구를 들이면서 소품 가구 몇 개는 버리기 아까워 용달차를 불렀다고 한다. 달랑 한 개라고 했던 가구는 의뢰로 크기가 만만치 않았고 소품 가구도 몇 개가 더 있어서 오랫동안 동료로 일했던 지인을 불렀다 한다.

 문제는 용달비였다. 기존 계약금에 동료의 일당으로 몇 만 원을 더 요구했는데 돌아온 답변이 쩌릿했다 한다. 새 가구도 스폰으로 받았고 운송비도 무료인데 그러려면 매니저를 통해 소속회사에서 처리하라고 할 테니 그냥 가시오 라고 했다 한다. 일 온 동료를 그냥 보낼 수 없어서 받은 용달비를 동료에게 주고 연예인 집 구경 했으니 그 값 받은 셈 치자며 기름값에 톨비에 하루 공쳤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은 우상화한 자신의 모습에 도취돼 현실 판단 능력이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일화다.

 연예인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래서 주윤발의 인생관이 숭고해 보인다. 그는 사람들 등을 안아주고 다독여 세속의 이해를 넘어서는 놀라움을 선사했다. 진정한 영웅본색으로 다시 돌아온 님이 고맙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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