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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내년 2학기부터 서울시내 중·고등학교의 두발규제 규정이 사실상 완전히 사라질 것 같다. 머리카락 길이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물론 파마나 염색도 지금보다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서울이 먼저 시작했으니 머잖아 전국으로 확산되리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말 기자회견을 열어 중·고교생 두발규제를 폐지하는 ‘두발 자유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각 학교에서 자체 공론화 과정과 의견수렴 등을 거쳐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는 하지만 학교 현장에선 이번 두발 자유화에 대한 찬반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머리카락 길이나 모양을 획일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구시대적이라는 의견과 함께 두발자유가 자칫 방종으로 이어질 수 있고 학생 생활지도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54.8%가 두발 자유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응답(40.4%)이 반대보다 14.4% p가 낮은 결과이다. 조사대상의 절반 이상이 중·고등학생의 두발 자유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20∼30대 젊은 층에서는 찬성이 우세한 반면 40대 이상 보수 성향을 지닌 층은 반대 여론이 우세했다. 반대 목소리가 적잖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예상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반대하는 쪽의 주장은 대부분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라거나 ‘외모에 신경쓰다 보면 공부에 소홀하게 된다’, ‘학생 생활지도가 어려워진다’라는 지적부터 ‘경제적 부담이 커져 소외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 등이다. 물론 모든 정책이 그러하듯이 다소 부작용이 전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중·고등학교에서의 두발규제는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5년 교육인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당시만 해도 중학교 92.6%(2천761곳)와 고등학교 91.1%(1천94곳)에서 두발규제를 했으며, 가위를 이용해 강제로 머리카락을 잘랐다는 학교도 많았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지난해 말 현재 대부분의 학교가 학생 생활규정으로 여전히 파마나 염색을 금지·제한하고 있기는 하지만 머리카락 길이를 규제하지 않는 학교가 84.3%(708곳 중 597곳)에 이른다.

 한 학부모단체가 지난 6∼7월 학생들을 통해 전국 200개 중·고교 학생 생활규정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39.5%(79곳)정도가 머리카락 길이를 규제하고 있었고, 파마나 염색 등을 제한하는 곳은 88.0%(176곳)정도였다. 역시 10여 년 전 교육부 자료와 비교하면 확실히 중·고교 두발규제가 많이 줄었고 서서히 사라지는 경향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두발규제는 우리같이 나이가 든 세대들은 이미 학생시절에 모두 경험해본 일이다. 그 시절 중·고등학교학생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속칭 ‘스포츠가리’, ‘빡빡머리’, ‘단발머리’를 해야만 했다. 매일 교문을 통해 등교하려면 반드시 머리 검사를 받아야 했고 규정에 위반했다고 가위질을 당한 친구들도 한둘이 아니다. 선생님 몰래 단 1㎝라도 머리카락 길이를 길러 보려고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른다. 오늘날에도 학생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그 시절과 크게 다를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학생들의 머리 모양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탈선한다거나 학업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아무래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을 믿지 못하고 지레 걱정하는 바람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여러 대안학교나 혁신학교 같은 곳에서는 머리카락 길이는 물론 파마와 염색도 자유롭지만 우려할 만한 현상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헌법이 규정한 ‘신체의 자유’나 ‘관행적인 두발 단속과 제한이 인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학생들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그들을 믿어보자.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가수 전인권이 부른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노래가사의 첫머리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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