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인천대 외래교수.jpg
▲ 김호림 칼럼니스트
‘미국우선주의’를 기치로 등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중심의 새로운 세계정치·경제 질서재편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 제국주의적 팽창 야욕을 숨기지 않는 시진핑이 ‘중국 몽’으로 버티며, 미국과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까지 ‘공포의 균형’ 관계를 유지해온 미·중 G-2의 공존은 한계점에 다다라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지난 10월 4일 미국 ‘허드슨연구소’에서 행한 펜스 부통령의 ‘미 행정부의 대중국 외교정책에 관한 천명’이란 연설이 그러하다. 그의 연설 원문은 무려 A4용지 11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으로, 외교적 수사 없이 사실 그대로를 적시하고 있다. 즉 중국은 범정부 차원에서 정치, 경제, 군사적 수단과 선전을 통해 미국의 국내정책과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미국 조야의 각계각층에 침투해 그들의 국가이익을 차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환율 조작, 불공정한 무역거래, 기술 이전의 강제화, 지적재산권의 약탈 및 국내 산업보조금 등 국제 경제 질서 파괴와 ‘메이드인 차이나 2025’정책으로 로봇산업, 바이오테크노로지, 인공지능 등 세계 첨단산업의 90%를 통제하려는 계획을 예시하고, 군사적으로는 미국과 군비경쟁, 남중국해의 인공섬 구축으로 자유 항행 방해, 그리고 일대일로 구축을 위한 ‘차관외교’로 아시아·아프리카지역의 군사기지화 획책을 들고 있다. 이뿐 아니라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에서의 중국의 인권탄압 문제도 거론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무소불위 행위에 대응해 미국은 경제책략을 가동하고 있다. 이는 곧 관세를 매개로 한 무역보복이며, 새로운 냉전의 시작을 시사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기고자가 펜스 부통령의 연설을, 마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에서 소련을 향해 ‘이 벽을 허물라’라고 외친 것처럼, 시진핑을 향해 냉전을 선언한 것으로 비유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도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은 옳은 것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최근의 미·중 양국이 벌리는 무역마찰은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단기간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가능한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겠지만, 이미 양국의 관계는 악화돼 전면적 냉전으로 돌입할 것이라는 예측을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은 해왔다. 펜스 부통령의 연설 내용과 같이,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시행한 대중국 포용정책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공개된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은 중국을 수정주의 세력으로 보고 있으며,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을 축출하려는 중국의 노력에 단호히 대응키로 한 결기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러면 누가 이 무역 갈등의 승자가 될까? 전문가들은 상반된 예측을 보이고 있지만, 대체로 중국이 패배할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침체하는 중국의 경제구조와 군비경쟁이다. 중국의 거시경제는 감속성장, 노령화에 따른 복지비용 증가, 높은 부채 비율, 차입과 대출의 만기 불일치, 비효율적인 국유 기업의 정치적 부담, 그리고 미국과의 확대되는 무역 마찰로 인해 제한된 자원을 소모시켜 침몰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제력으로 미국을 능가할 수 있는 수준의 국방 예산을 중국공산당은 지원하지 못할 것이며, 또한 일대일로와 같은 제국주의적 팽창 프로젝트에 경상수지 흑자를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경제는 경이적인 고도성장과 사상 최저의 실업률을 시현해 여유 있게 경제책략의 전 과정을 관리할 수가 있게 됐다. 최악의 경우, 미국은 환율조작국 지정이나 달러 자산동결 등 금융 책략의 무기를 중국에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어느 패권국도 도전자에게 쉽게 패권을 넘겨준 사례가 없었다. 1985년, 일본이 미국의 경제패권에 도전할 때, 엔화가치 조정 합의를 통해 일본경제에 타격을 가했다. 이것이 미국이 가진 금융 책략의 위력이다. 소련의 붕괴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무역조치에서 몇 가지 함의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축소하는 것이다. 그 다음 의도는 미국이 다자체제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양자 간 체제로 국제경제 질서를 바꾸려는 신호이다. 마지막은 냉전을 통해 중국의 세력을 무력화시켜 북핵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삼을 것이다. 이러한 냉혹한 국제정치경제 현실에서 우리는 이기는 자의 편에 서야 생존할 수 있다. ‘국제정글에서 실수(잘못된 선택)에 대한 자연의 판결은 죽음’이라는 에치슨 장관의 말을 기억하자.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