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미국과 북한은 자기 자리서 꿈적도 않는데, 홀로 불철주야 노력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 측은해 보인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이번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선(先) 대북제재 완화를 통한 비핵화 촉진’ 협조 요청을 거절한 경우도 그러한 예다. 이 장면은 측은지심을 넘어 국격의 손상, 국민적 수치심까지 들 정도였다. ‘비핵화 후 제제 완화’라는 국제원칙에 반하는 요청을, 그것도 최대 동맹국(미국)의 전통적인 견제국(프랑스)에 부탁했다 거절당한 모양새라 불편함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치밀하게 조율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허언을 하게끔 만든 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다행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김정은의 방북 초청’ 의사에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비록 대북제재 완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순 없겠지만, 교황의 권위가 단순한 종교 대표를 넘어 ‘사랑과 평화, 인류애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물론 성사 여부는 녹록지 않다. 교황이 방북하려면 종교행사가 준비돼야 하는데, 북한엔 가톨릭 신자는 물론 종교의 자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중시하는 교황이 친인척과 형제를 살해하고, 주민의 인권을 처참하게 유린한 독재자와의 만남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지도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결국 인권을 신장시킬 의지나 관련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 없다면 무의미한 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비난과 우려 속에서도 한국 대통령은 북한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경제위기와 고용참사, 이익단체들의 기득권 지키기 등 사회 전반이 힘들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경협에 과속하는 모습을 보이고, 국방력 감축과 군사훈련의 유예 등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사자도 성의를 보이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그런데 김정은은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핵 무기·물질·시설에 대한 리스트 신고’ 거부 의사를 밝혔고, 제재 완화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조치가 먼저 이뤄지지 않는 한 대북제재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이것이 유럽 순방을 통해 깨달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 흐름이요, 당연한 원칙이다. 이제는 북한이 화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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