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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물치도(勿淄島)는 일본인에 의해 작약도(芍藥島)로 이름이 바뀐 만석동에 속해 있는 동구 유일의 섬이다. 조선시대에는 부평부에 속했다가 자연도(영종도)에 영종진이 이설된 후로 영종진에 땔나무를 공급하는 그저 나무가 무성한 정도의 무인도였다. 물치도라는 이름은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를 치받는 섬’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풀이되고 있는데 ‘무치도(舞雉島)’라 표기되기도 했고 대동여지도, 동여도 등 조선 후기의 여러 지도에 나타나고 있다. 작약도란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화가 스즈키가 물치도를 사들인 후에 이 섬의 형태가 작약꽃 봉우리와 유사해 붙였다 하기도 하고 작약이 많이 자생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지만 그 연유에 대해서는 확실하지가 않다.

 개항기 서구 열강들은 조선의 통상과 개항을 위해 한반도의 ‘배꼽’이라고 불리는 강화도로 접근하는 뱃길을 찾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서울의 관문인 강화도를 무력으로 점령하기만 하면 삼남의 조세 운반 등 바닷길을 통한 모든 혈맥을 차단할 수 있다고 보았고 그 자체가 조선 조정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쇄국으로 무장한 조선과의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강화도의 점령은 필요한 조치였던 것이다. 1866년 천주교박해에 대한 보복원정을 시작한 프랑스 로즈함대는 한강 입구 탐색에 나섰고, 월미도와 작약도를 지나 염하를 찾아내어 이를 통해 한강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때 작약도는 프랑스함대의 이름을 따서 보아제(boisse)라 기록됐다.

 병인양요 당시 제1차 침입(9월 22일~30일)과 제2차 침입(10월 14일~11월) 동안 프랑스 함대는 작약도를 본부 거점으로 삼아 정박하면서 작전을 개시했다. 작약도 앞바다는 월미도와 사이에 깊은 수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밀물 때의 수심 15m가 썰물 때에는 4m로 줄어들어 정박에는 주의가 필요했지만 그나마 이곳이 양호해 이후 서양과 일본 함대는 작약도를 정박지로 삼았던 것이다. 제너럴셔먼호에 대한 진상 조사와 조선의 문호 개방을 위해 발생한 1871년의 신미양요는 5월 26일 미국 군함 5척이 이 섬에 정박한 이래 7월 3일 지부항(芝부港)으로 회항하기까지 작약도는 미국 군함의 근거지로 사용됐다. 이때도 역시 나무가 울창하다고 하여 우디아일랜드(woodyisland, 木島)라고 했다.

 작약도는 개항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몸소 체험했던 현장이었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미국 순양함 세인트폴호는 인천 외항의 경계 상황을 살펴보고자 월미도와 영종도 사이에 놓여 있는 작약도로 갔고 40여 명의 ‘성육원’ 고아들을 발견했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있던 고아들은 바닷가에 떠밀려 온 상한 음식 등을 먹으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세인트폴 미군들이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52년의 시간이 흐른 2003년 이들의 감동적인 재회 이야기는 전국으로 생생하게 전달되기도 했다. 작약도 섬 정상에는 1949년 6월 광복 후 최초로 세워진 무인등대가 설치돼 있는데, ‘무치섬’ 등대로 표기돼 있다. 이 등대는 인천항과 주변 바다 길목을 알려주는 어부들의 등불이자 군사적 요충지로도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인천국제공항의 길잡이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60년대 이래 각종 공장에서 흘러나온 오폐수와 생활하수로 한강의 수질이 나빠져 수영이 금지되자 수도권의 많은 사람들이 작약도를 찾아오게 되면서 작약도는 일약 송도유원지, 월미도유원지와 대등하게 인천을 대표하던 해상유원지로 변신했다. 월미도 선착장에서 배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작약도는 둘레가 1㎞에 불과한 작은 섬인데, 현재는 불행하게도 뱃길마저 끊어져 버린 상태에 있다. 작약도의 소유자가 여러 번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난 경영상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작약도와 인접한 월미도와 영종도를 함께 묶어 역사적 흔적으로 찾아 볼 수 있는 새로운 해상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작약도라는 명칭 대신 원래의 이름인 물치도로 환원돼도 의미 있을 것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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