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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세상을 바꾼다

박정환 정경부장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10월 24일 수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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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정경부장
‘지구의 둘레는 얼마쯤일까?’ 결론은 4만120㎞이다. 웬 뜬금없는 얘기냐며 쏘아붙일 이들도 있을 게다. 휴대전화를 몇 번만 끄적거리면 될 일을 무슨 대단한 앎인 양 법석을 떠느냐며 비아냥거릴 법도 하다.

 하나 지구의 둘레에 숨겨진 진실을 끄집어 내면 오싹할 것이다. 오차는 조금 있어도 우리 행성의 둘레를 정확히 예측한 것이 2200년 전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흔하디흔한 막대기와 걸음 폭, 눈 등 육감을 갖고서 말이다.

 이 창조적 발견에는 실체적 검증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는 한 지식인의 지독한 열정이 있었다. 기원전 3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는 ‘에라토스테네스’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의 별명은 ‘베타(β)’였다. 그를 시기하고 경쟁 상대로 여겼던 이들이 붙인 오명이었다. 베타는 그리스어 알파벳의 두 번째 글자다. 그는 무슨 일을 하던 그 분야에서 여지없이 둘째 가는 뒷전의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는 파피루스 두루마리 책을 들추다가 난생 처음 보는 내용을 접했다. ‘남쪽 변방인 시에네 지방 나일강의 첫 급류 가까운 곳에서는 6월 21일 정오에 수직으로 꽂은 막대기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

 1년 중 해가 가장 긴 하짓날 태양이 머리 위를 지나는 정오를 뜻했다.

 ‘나무 막대기, 그림자, 태양의 위치.’ 단순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무슨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으랴? 여느 사람 같으면 쉽게 지나쳐 버릴 관측 보고였다.

 에라토스테네스는 곧장 검증작업에 들어갔다. 알렉산드리아에 막대를 수직으로 꽂고 그 막대기가 6월 21일 정오에 그림자가 드리우는지를 직접 조사했다. 결과는 ‘그림자가 생겼다’였다. 그는 ‘왜’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졌다. 같은 시각 시에네의 막대기에는 없는 그림자가 알렉산드라아의 막대기에 생긴 까닭은 무엇일까? 혹시 지구가 평평하지 않은 것 아닐까? 지구의 표면이 곡선인 것은 아닐까?

 에라토스테네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800㎞ 떨어진 시에네로 사람을 보내 6월 21일 정오에 막대기 그림자의 길이를 재기로 했다. 그림자 길이의 차이로 따져보니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는 지구 표면을 따라 7도 정도 떨어져 있어야만 했다. 지구는 평면이 아닌 공 모양이었다.

 그는 지구의 둘레 계산하기에 나섰다. 360도의 7도는 대략 50분의 1이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에네의 거리는 800㎞, 그럼 지구의 둘레는 50×800= 4만㎞이었다. 지금의 인공위성으로 잰 지구의 둘레와도 그리 큰 오차가 아니다.

 세상이 다시 만들어졌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는 이 창조적 발견의 단초는 기록물과 도서관이었다. 에라토스테네스를 ‘베타’가 아니라 확실한 ‘알파(α)’로 굳건히 세운 터전 역시 기록물과 도서관이었다.

 천문학자이자 역사학자, 수학자였던 에라토스테네스는 당시 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의 관장이었다. 한때 이곳은 지구에서 가장 거대했던 도시의 심장이자 세계의 지식인과 학문의 성채였다. 세계의 문헌들이 집결하는 역사상 최초로 세워진 진정한 의미의 연구 현장이었다.

 에라토스테네스의 과학적 진실은 1천 년간 학문의 암흑기를 관통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현대 인류가 쏘아 올린 ‘보이저’ 호의 목성 탐사도 어찌 보면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장인 에라토스테네스 연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천의 기록물 관리는 애처롭고 민망하기까지 하다. 딱히 보관 공간이 없어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것이 인천의 기록물이다. 인천 관련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도서관은 언감생심이다. 정체성이 없는 도시로 비칠 수 있는 노릇이다. 기록물은 단순히 지나간 역사의 저장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를 통해 닿을 수 있는 미래이자 꿈을 탑재한 희망이다. 인천의 기록물과 도서관이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처럼 되지 말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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