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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석금(昔今)

원현린 주필(主筆)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10월 24일 수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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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主筆)
오늘은 ‘유엔 데이’로 불리는 ‘국제연합일’이다. 유엔은 국제평화와 안전유지, 국가 간 선린관계 발전, 경제·사회·문화·인도적 문제 해결 및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존중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목적으로 출범한 국제 평화기구다.

 나는 해마다 이날이 오면 미국 뉴욕에 위치한 유엔본부 총회장으로 달려가곤 한다. 누구보다 감회가 새로운 나다. 잠시 4반세기가 넘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해인 지난 1991년 9월 24일, 당시 노태우 대한민국 대통령은 ‘평화로운 하나의 세계공동체를 향하여’라는 제하의 제46차 UN총회 연설에서 "우리 UN대표단의 자리가 옵서버석에서 회원국으로 불과 수십m 옮겨 오는 데 40년이 넘어 결렸고 동·서독의 두 의석이 하나로 합쳐지는 데는 17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의 두 의석이 하나로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두 의석이 하나로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연설문이 마이크를 통해 장내에 울려 퍼지자 참석 회원국 대표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특파원으로서 현장을 목도하며 취재에 임했던 나로서는 더더욱 감회가 새롭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라는 역사의 현장에 서서 침묵마저 놓치지 않고 생생한 기록을 남기고 있던 나의 펜마저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떨렸다.

 연설 내용 중 압권은 "첫째, 남북한은 불안한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둘째,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남북한은 군사적 신뢰의 구축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군비 감축을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셋째, 남북한은 사람과 물자, 정보의 자유로운 길을 열어 단절의 시대를 종식시켜야 합니다. 한반도의 남과 북에는 분단과 전쟁으로 헤어진 1천만 이산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헤어진 부모형제의 생사나 거처조차 모르고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화 주고 받을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두고… 남북한 간의 신뢰회복이나 관계개선을 말할 수 없습니다!"였다. 이 대목에서도 참석국 대표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이로부터 27년이 흘렀다. 동·서독은 17년이 걸렸다 했다. 우리의 통일도 머지않은 장래에 필히, 반드시 이뤄지리라 믿었던 우리다. 적어도 그때 그자리, 뉴욕 유엔본부 총회 참석자들은….

 안타깝게도 기대는 빗나갔다. 지구상 유일하게 남은 한반도 냉전체제는 국제평화기구라 일컬어지는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도 4반세기가 넘도록 지속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의 국제정세는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에 신냉전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들 군사강국들이 군비강화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분구필합(分久必合), 나뉜 지 오래면 반드시 합해진다. 바야흐로 세월이 흘러 다시 합해지려는 희망의 조짐이 한반도에서 보이고 있다. 정식 회원국은 아니었지만 남과 북이 유엔에 가입하기 전인 43차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우리는 "한반도에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날, 세계에는 확실한 평화가 올 것"이라며 세계인을 향해 ‘평화’를 설파했다.

 이후로도 ‘평화와 번영의 21세기를 향하여’, ‘유엔의 변화와 개혁-21세기 공동체 시대를 향한 새 출발’,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정착’ 등등의 역대 우리 대통령들의 유엔 연설이 이어졌다. 근자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비핵화를 향한 길, 평화로운 세계를 향한 여정에 여러분 모두, 언제나 함께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라며 ‘평화’를 누차 강조 했다.

 그 숱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별반 변한 것이 없었던 한반도 정세였다. 그러던 것이 올해 들어 남북한 세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과 북·미 회담, 북·중 회담, 남북한 유엔 연설 등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평화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물실호기(勿失好機)라 했다. 좋은 시기는 거듭 오지 않는다. 노력 여하에 따라 호기를 잡을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다. 이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후회를 뒤에 남기지 않는 남과 북이 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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