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실무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7일 구속되면서 검찰 수사가 양승태 사법부의 최고위층 인사들을 직접 겨냥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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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주최로 열린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관련자 검찰 고발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양 전 대법원장의 탈을 쓴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검찰이 보는 임 전 차장의 윗선은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임 전 차장의 30개 혐의 대부분에는 이들이 임 전 차장의 '공범'으로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법원 최고위층의 의사가 반영된 '조직적 범행'으로 본다는 의미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연이어 지낸 박·고 전 대법관은 같은 기간 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행정처 차장을 역임한 임 전 차장의 직계 상급자 격이다. 임 전 차장은 검찰에서 일부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법관은 임 전 차장을 통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논의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연시키거나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소송,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진료' 관련 소송에 개입한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포착됐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논의한 내용을 파견 판사를 통해 빼돌리거나 대법원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뒷조사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있다.

후임 행정처장인 고 전 대법관도 현직 판사가 연루된 부산지역 건설업자 뇌물사건 재판에 관여하고,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소송에서 청와대가 바라는 방향의 법리검토를 주문했다는 의혹 등이 불거진 상태다.

검찰은 이런 의혹 사항들이 최고 의사 결정권자의 승인·묵인·지시 없이는 결코 이뤄졌을 수 없다고 보고 이 시기 사법행정의 최종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로 입건한 검찰은 지난달 말과 이달 초 주거지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사실상 불발된 바 있다.

그러나 법원이 임 전 차장의 혐의가 소명된다고 판단하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한 수사 상황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의혹의 최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의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문무일 검찰총장이 국정감사에서 밝힌 것처럼 수사가 연내 마무리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논의와 결부해 법원이 검찰에 임 전 차장의 신병을 내어주는 식으로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 섞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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