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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웅 변호사
최근 국정감사에서 야당의원이 외교부장관에게 "북한이 국가입니까?"라고 물었다. 외교부 국정감사뿐 아니라 국방부나 광주시 등 다른 국정감사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몇 차례 있었다. 이 질문은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군사합의서를 비준하면서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아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배경에서 나왔다. 관련하여 청와대는 북한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와 조약을 체결할 수 없고, 남북군사합의서는 조약이 아니며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내용이 없으므로 대통령이 비준하는데 국회의 동의를 필요하지 않다는 취지로 설명한 바 있다. 청와대의 설명 중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라는 말이 빌미가 됐는데,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저서에서는 북한도 사실상 국가로 보아야 하므로 남북 합의도 국회의 비준을 받는 것이 좋다고 했으면서 청와대가 표리부동한 태도를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야당에서 남북군사합의서에 대해서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기존 입장과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남북군사합의의 모체가 되는 판문점선언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국회에 비준 동의를 요청한 바 있는데, 이때 자유한국당은 지난 4월 30일 논평을 통해서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협약에 대한 ‘국회 비준’을 국가도 아닌 대상에 적용한다는 것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말과 같다고 주장하며 판문점선언은 국회비준 대상 자체가 아니라고 한 바 있다. 사실, 북한의 법적 지위와 관련해서는 이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헌법과 관련 법률을 기반으로 해 판례로 입장을 정리한 바 있고, 법조계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는 널리 인용돼 권위가 인정되고 있다.

 판례에 따르면 북한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자유민주체제에 위협이 되는 반국가단체라는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고 하면서, 만일 북한이 자유민주체제를 전복하고자 하는 적화통일노선을 포기했다는 명백한 징후가 있다면 반국가단체의 성격이 소멸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헌법상 평화통일 규정과 영토조항, 남북한의 역사적, 정치적 현실을 모두 고려해 내놓은 해석이다. 법률적으로 북한은 평화통일로 가는 동반자이자 반국가 단체라는 이중적인 지위에 있으며, 평화통일에 대한 비전과 국내외 정세에 따라서 어느 측면을 강조해야 하는지 정치적 판단이 필요할 뿐이다. 요컨대 현행 헌법의 해석상 북한은 일종의 특수한 관계로 규정될 수 있어 국가로 보기는 어렵고, 북한과 체결한 협약도 조약으로 볼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북한이 국가가 아니라는 청와대의 설명이 틀린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판문점선언이나 남북군사합의서 모두 국제법상 조약이 아니다. 다만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3항에서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거나 입법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비준에 대해서 국회가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판문점선언에 대해서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법률적으로 본다면 청와대의 주장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북문제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고, 그래야 성과를 낼 수 있으므로 국회와 국민을 좀 더 설득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번 논란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가 성과를 내려는 과욕의 산물이지는 않을까 두렵다. 남북군사합의서의 모체가 되는 판문점선언이 아직 국회 비준 동의를 못 받았기 때문에 군사합의서를 먼저 비준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부당하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외교적으로 중대한 시기인 것은 분명하나 확고한 국민적 지지 역시 대북협상 성공을 위한 필수적 요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첨언하면, 이 문제를 제기하는 야당의 방식은 문제가 있다. 판문점 선언이나 남북군사합의서를 반대한다고 한다면 그 구체적인 내용을 국익이나 국제 정세를 바탕으로 비판하는 것이 옳고 그 방향으로 당론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북한이 국가입니까?"라는 색깔론 향기를 피우는 질문이나 하면서 여론몰이에 매진하고 있다. 대북문제에 대해서도 야당은 장기적인 비전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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