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6월 문화재청은 창덕궁(昌德宮) 낙선재(樂善齋) 권역의 석복헌(錫福軒)과 수강재(壽康齋) 두 전각을 고급 객실로 꾸며 외국인을 대상으로 고품격 숙박체험을 할 수 있는 ‘궁 스테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다.

 ‘궁 스테이’란 궁궐을 의미하는 ‘궁(宮)’과 ‘머무르다, 숙박하다’는 뜻의 ‘스테이(Stay)’를 합성한 당시의 신조어였다.

 보물 제1764호인 낙선재는 1847년 조선 헌종 때 만들어진 건물이며, 낙선재 권역은 석복헌과 수강재 등 9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당시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된 낙선재를 제외하고 비지정 문화재인 두 전각을 외교사절이나 CEO 등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고급 숙박시설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문화재를 효율적·합리적으로 보존하고 국민들에게 더욱 다가가게 하겠다는 목표였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여론의 뜨거운 질타를 받다가 3개월 만에 무산된다. 하루 수백만 원에 달하는 숙박료가 과연 국민들을 위한 사업인지, 또 숙박시설로 사용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구조의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등의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석복헌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비인 순정효왕후가 1966년까지 기거했고, 수강재는 우리가 익히 들은 조선의 마지막 옹주 덕혜옹주가 1989년까지 머물다 생을 마친 곳이다. 낙선재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부인인 이방자 여사가 잠든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숨결은 무시한 채 ‘궁궐’을 ‘고급호텔’로 연결시켜 돈을 벌겠다는 자본주의적 발상이라는 비난이 계속됐다.

 인천시가 시 유형문화재 제17호인 제물포구락부를 세계 맥주를 판매하는 곳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제물포구락부는 제물포항 개항 이후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모여 문화를 교류하는 장소였다. 당시 그 자리에 술이 있었다는 이유로 세계 맥주를 판매하겠다는 발상은 상식으로 접근하기 힘들다. 특히 화기에 의한 문화재 훼손 우려를 줄이기 위해 조리하는 안주 대신 마른안주만 판매하겠다는 인천시 공무원의 답변은 할 말을 잊게 한다. 인천시역사자료관 역시 시사편찬위원회의 향후 역할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지고 장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다. 지역사회의 보다 큰 목소리와 시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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