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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올해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 의원이 폭로한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사립유치원의 비리 행태는 놀랍기 그지없다. 유치원 예산을 명품백이나 성인용품 등 개인 물품을 사는데 유용한 사례도 있고, 자녀와 남편 등 가족을 직원으로 등록해 1인당 1천만 원이 넘는 월급을 챙긴 사례도 있다. 원장 개인의 저축보험금, 종합부동산세, 동창회비, 경조사비를 유치원 운영비로 지출하고 콘도미니엄 회원권을 매입한 사례, 교재비를 부풀려 예산을 횡령한 사례 등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힘들다. 학부모들은 부패한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자녀가 부당하게 열악한 대우를 받아왔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비단 사립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만 분노케 한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왜냐하면, 매년 약 2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정부의 사립유치원 지원금 즉 국민이 낸 세금이 이처럼 허술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비리를 저지른 사립유치원에 대해서 뿐 아니라 지금까지 이런 사태를 방치해온 행정관청의 부실한 감독에 대해서도 크게 분노하고 있다.

 사립유치원뿐 아니라 요양원 비리도 심각하다. 한 요양원장은 정부 지원금으로 벤츠 승용차를 몰고, 골프장을 드나들며 7천700만 원을 유용했고, 나이트클럽 술값과 해외여행비도 충당했다. 또 다른 요양원장은 성형외과 진료비와 유흥비, 손자 장난감 구입비도 요양원 운영비로 썼다고 한다. 이런 비리가 비단 사립유치원과 요양원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도처에 널려 있다. 사실 국민의 세금이 여기저기서 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나랏돈은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다", "나랏돈은 눈 먼 돈, 못 쓰면 바보다"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각종 명목의 정부 지원금이 엉뚱한 곳으로 줄줄 새는 현실을 접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해온 납세자들의 가슴속엔 크게 화가 치민다. "현실이 이런데도 정부는 걸핏하면 세금만 올리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부글부글 끓는 납세자들의 불만을 정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국에서 기차를 타려면 대합실을 나와 승차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합실 출구에 탑승 대기자들이 길게 늘어서 역무원으로부터 일일이 기차표를 검사 받은 후에 승차장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심지어 공항에서처럼 사람과 수하물에 대한 검색대 통과 절차도 거쳐야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기차 탑승이 매우 간편하다. 역무원으로부터 기차표를 검사받지 않고 바로 탑승하기 때문이다.

 사실 오래 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역무원이 대합실 출구에서 일일이 탑승자의 표를 검사하고 펀칭해주는 절차가 있었다. 요즘엔 탑승 전에 이뤄지던 표 검사를 없애고 기차 운행 중에 가끔 불시에 승객들을 대상으로 표 검사를 한다. 그리고 무임승차자가 적발되면 정상요금의 최고 30배까지 벌과금을 부과한다. 이처럼 엄중하게 제재하기 때문에 무임승차자는 거의 없다. 승객의 탑승이 매우 간편해졌고, 표 검사에 소요되는 인력과 비용도 크게 절감된 것이다.

 각종 정부 지원금 사용에 대한 감시·감독에 대해서도 이런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정부지원금 유용사례를 적발하기 위해 전면적인 감시·감독을 하려면 많은 행정비용이 수반된다. 따라서 무작위로 실시하는 불시단속을 빈번하게 실시하고, 유용사례가 적발되면 유용금액의 수십 배로 벌과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지원금 유용사례에 대한 신고를 장려하고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 지급을 활성화한다면, 정부 지원금 유용 방지에 효과가 클 것이다. 법·제도의 개선과 감독 행정의 강화를 통해 국민의 혈세가 사악한 자들의 검은 뱃속을 채우는 데 쓰이지 않도록 정부는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재정을 집행하는 것 즉 세금을 나눠주는 것만으로 정부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며, 필요한 곳에 지원되는지 지원된 자금은 용도에 맞게 적절히 사용되는지 지속적으로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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