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경기도내 예술계는 작은 변화의 바람을 맞는다. 자치단체들은 하나둘 지은 공연장에 덩그러니 놓인 빈 공간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민간 예술단체들은 높은 임대료를 피해 상주할 공간이 필요했다. 두 주체의 ‘니즈(needs)’는 둘의 공존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바로 ‘공연장 상주단체’의 일출이었다.

이때부터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짝짓기가 시작됐고 저마다의 이해관계 속에 자리를 잡아왔다. 공연장은 예술단체에 공간을 제공하고, 예술단체는 공연장을 통해 수준 높은 무대를 지역주민들에게 선사한다.

현재 도내에는 각 지자체가 관리하는 공연장 곳곳에 상주단체가 존재한다. 또 경기문화재단은 해마다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사업’을 통해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재단 사업에 선정된 상주단체 가운데 5곳을 찾아 그들의 활동 모습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1.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난 2000년, 창단한 지 3년이 지난 한 오케스트라가 내홍 아닌 내홍을 겪어야 했다. 따지고 보면 그리 큰일도 아니었지만 일부 단원들은 ‘서울’을 버릴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수도(首都)에서 활동을 해야 좀 더 그럴 듯해 보이고, 무엇보다 집과 멀어진다는 거리감이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의견이었다. 당시 내로라하는 오케스트라들의 활동 무대가 그랬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의 터를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니. 쉽게 수긍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단장의 설득은 계속됐고 결국 그해 3월, 이 오케스트라는 군포문화예술회관(군포문예회관)에 둥지를 틀게 된다. ‘군포 프라임필 하모닉오케스트라’가 군포문예회관에 상주하게 된 서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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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주의 설움? 실력으로 극복

 1997년 ‘프라임필 하모닉오케스트라’로 서울에서 창단한 군포 프라임필 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프라임필)는 도내 상주단체 가운데에서도 선봉장 격이다. 김홍기 단장의 과감한 결단으로 공연장과 예술단의 ‘윈-윈’체계를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라임필의 이 같은 행적은 이후 다른 공연장 상주단체에게도 영향을 줬다. 롤모델로 벤치마킹 대상이 됐으며, 정부와 지자체 및 유관기관의 협력이 있을 때는 성공사례와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사실, 프라임필이 처음부터 군포문예회관에서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초창기에는 공간 개념의 지원(저렴한 비용의 임차)만 있었을 뿐 민간 오케스트라로서 어려운 일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4년, 묵묵히 활동해 온 프라임필의 업적이 인정됐고 이때부터 군포시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게 된다. 물론, 이 자금은 사업자금이 대부분이다. 군포에서 군포시민을 위한 공연을 해 달라는 명목이다.

 프라임필 김홍기 단장은 "민간단체로서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민간 오케스트라로서 2관 편성에 매년 50명 안팎의 정단원을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라며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임필이 주목을 받는 건 ‘운영의 묘’다. 시로부터 공식 자금을 지원 받기 시작하면서 프라임필 앞에 지역 이름인 군포를 붙여 활동했고, 연간 100회가 넘는 연주회에 크고 작은 무대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지역 주민에게 수준 높은 연주를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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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라노 조수미 공연 모습.
#단원은 물론 관객까지 배려

 프라임필은 민간 예술단체로서 운영은 단장체제이다. 연주의 경우 시기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현재는 장윤성 지휘자가 프라임필의 지휘를 맡고 있으며 오페라나 발레단체는 물론, 정통 교향악 축제에도 러브콜을 받을 만큼 단원들의 연주 실력도 인정받고 있다. 프라임필은 해마다 열리는 ‘교향악축제’에 국공립단체가 아닌 민간단체로 참가하는 유일한 오케스트라다.

 단원들의 연주 실력은 자체적으로 계발 중인 ‘역량강화 프로그램’이 한몫 거들었다는 평가다. 지난 10월 군포문예회관에서 가진 ‘거꾸로 듣는 클래식’의 경우 단원들이 협연자로 나서 무대를 꾸몄다. 통상 연주회에서 협연자는 그 분야의 ‘외부 실력자’가 섭외되지만, 프라임필은 단원들의 실력을 믿고 스스로 협연자를 자처한 것이다. 기본 실력을 바탕으로 협연자로 나서니 단원들의 연주 역량 향상은 덤인 셈이다.

 관객을 위한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프라임필은 지난 5월부터 ‘2018 시크릿 클래식’을 가동 중이다. 클래식 해설가 최은규 강사를 초빙, 매달 한 번씩 음악을 좋아하는 남녀노소 누구나 경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교향곡의 탄생부터 교향곡 대가들의 대표작까지 작곡가들의 삶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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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기 단장
# 협업으로 창작의 끈 잇는다

 올 초 평창올림픽 개막공연 연주를 맡았던 프라임필은 성악가 조수미 공연의 스테디 파트너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굵직굵직한 공연의 연주자로 나서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고 국립합창단과 오페라 ‘리골레토’를 선보였는가 하면, 이달에는 바그너 오페라 가운데 한국 초연의 연주자로 일찌감치 낙점됐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니벨룽의 반지’로 독일의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아임 프라이어’가 맡아 2020년까지 3년에 걸쳐 공연되는 대작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된 1부 ‘라인의 황금’은 오는 14∼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발퀴레’는 내년 4월, ‘지크프리트’는 내년 12월, ‘신들의 황혼’은 2020년 5월 예정이다.

 큰 프로젝트도 프로젝트지만 프라임필은 창작 공연이나 다른 예술단체와의 협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4년 여 전에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제작했다. ‘오페라는 비극’이라는 편견을 깨고 가족오페라 혹은 코믹오페라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 이 작품은 오는 12월에도 하남에서 공연 스케줄이 잡혀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울발레시어터와 협업한 ‘빨간 구두’이다. 역시 도내 공연장 상주단체 중 하나인 서울발레시어터와 지원금을 함께 투자해 지난해 초연한 작품이다. 도내 상주단체들이 하나의 작품을 위해 머리를 맞댄 사례로 이목을 끈 바 있다.

 김홍기 단장은 "지역에 자리한 예술단체로서 지역의 예술 발전에도 기여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그래야 군포시민들 나아가 경기도민들이 우리 프라임필을 애정 있게 봐 줄 테니까. 내년에도 놀랄 만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은 밝히기 어렵다. 그저 지금까지 해 왔듯 민간 오케스트라로서 좋은 소리, 멋진 공연을 선사할 계획"이라며 프라임필의 미래를 설명했다.

  박노훈 기자 nhp@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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